기록명 : “나의 작고 단단한 세상”
날짜 : 2024년 9월 23일
대상 : 종로구 38년 역사의 문방구
주제 : 종로의 이웃
기록 : 최대용

종로의 가장 북쪽에 북한산 경사를 따라 들어선 동네. 시내로 나가려면 필시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 납작한 일 층짜리 건물들에 작은 점포들이 조르륵 길 따라 앉아 있는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읍내다. 그곳에 휴일 없이 늘 열려있는 문구점이 하나 있다. 통나무를 뚝 자른 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일어나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인터뷰 전에 음료수 하나를 권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그러면서 오늘 어떤 손님이 주고 갔다며 이쁜 사과를 깎아 주셨다.
“먹을 걸 갖다주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추석이라고 과일이랑 강정이랑 송편 이쁘게 담아서 가져온 분도 있지, 롤케이크도 누가 가져왔지, 반찬 가져다주는 손님도 있고. 아, 케이크 드실래요?”
대답도 들을 새 없이 후딱 일어서셨다. 통나무 앉았던 자리가 반질반질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저 자리에 앉아 계셨던 걸까?
“86년도 6월부터 가게를 시작했어요. 38년 됐나 봐. 주위에 학교가 많아요. 학생들로 북적거리다 한 7~8년 전부터 한산해졌어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면서 학교에서 문구를 다 주니까 요즘은 뭐 사서 갈 일이 없지요. 동네 작은 문구점들이 점점 없어지고 사무실들은 인터넷에서 배달시키고.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먼 데서 일부러 문구점을 찾아서 이 동네까지 오는 손님들도 있어요. 문방구에만 있는 물건을 사러.”



문방구에만 있는 물건이란 무엇일까? 바닥에서부터 진열된 총천연색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팽이, 비눗방울, 캐릭터 카드, 플라스틱 반지, 돼지저금통 같은 걸까?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손님이 다녀갔다. 한 여학생은 코팅을 했다. 가격은 천원. 아저씨는 팩스를 받으러 왔다. 이것도 천원. 볼이 빨개진 아이들이 캐릭터 카드를 사고 조그만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와서 고민 끝에 작은 장난감 하나를 골랐다. 1,700원하고 500원.
교통카드에서 너무 빨리 돈이 나가버렸다는 할아버지는 버스 하차할 때만 한 번 카드를 찍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긴 설명 끝에 이해했다.

여기는 이상한 나라다. 어린이가 문구점을 들어설 때는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온갖 신기하고 자잘한 물건들이 눈높이에서 반짝이며 유혹한다. 그 많은 종류의 필기구 앞에 서면 긴장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뭔가 애매할 때는 알때까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장님은 이 이상한 나라의 주인이다. 이상한 나라는 없는 게 없다. 있는 거 빼고 다 있는 게 문구점이다. 커다란 복사기 뒤 사장님의 부언을 들으니 역시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전에는 전화카드랑 복권이랑 우표도 다 문구점에서 팔았다니까요.”
나의 작고도 단단한 세상을 만들다
“내가 이십 대 후반에 가게를 시작했어요. 매일 일곱 시에 문 열고 열 시에 닫았죠. 자식들한테 항상 미안한 게 학교에 한 번도 못 간 거. 소풍, 운동회도 가 본 적이 없고 입학식, 졸업식도 못 갔어요. 그때는 가게 문 닫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배달해 주는 물건으로는 손님들 요구를 일일이 맞출 수가 없어서 밤 열 시에 문 닫고 새벽에 물건 사러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다녔어요. 가게에 실어다 놓고 새벽 두 시에 집에 가요.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애들 도시락을 쌌어요. 항상 알람 세 개를 맞춰놨어요. 오 분 간격으로. 하나를 끄면 방문 뒤에서 울려요. 그럼, 억지로 기어가서 끄고, 그다음에는 부엌에서 울려요. 그러면 부엌으로 가서 잠 깨면서 밥하는 거지요. 그렇게 살았어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다
“6남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열네 살부터 공장에 다녔죠. 기숙사비, 식비 제외하고 나온 월급을 약간의 생활비 빼고 전부 고향으로 보냈어요. 그게 당연한 시대였어요. 공장은 3교대로 24시간 돌아갔어요. 어린 나이에 돈 버는 게 너무 힘들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러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어요. 결혼하면 잘살게 되겠지, 했는데 6남매 장남이더라고요. 나는 결혼해서 친정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시집 식구가 줄을 서게 된 꼴이지. 홀시아버지에 다섯 동생. 경상도 말로 장남은 부모 멧젤이다, 그래요. 부모 대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기제사 명절 제사 다 지내고 다섯 명을 오 년 동안 매해 결혼을 시켰어요. 돈이란 걸 쥐어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
“손아래 동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시동생이 자기가 제사 못 지낸대요. 왜 못 지내냐고 했더니 남자고 애들도 어려서 못 한대요. 그래서 동서 제사도 내가 지냈어요. 우린 전세에서 월세로 점점 가세가 기울었어요.


“그러다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조금씩이라도 모으고 돈을 만들 수 있었어요. 하다못해 그때는 집도, 전화도 다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었어요. 여자들이 대부분 혼자 경제생활을 하지 못해서 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내가 장사를 안 했으면 여태 집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겠어요? 키울 때는 고생스러웠지만 아이들은 유학까지 보냈어요. ”
세상에 만상에 진상 손님들
다른 손님이 있어도 자기를 무조건 최우선으로 대우해달라는 손님이 있어요. 손님이랑 얘기하는데 누가 중간에 물어봐서 “잠깐만 보고 있으세요.”, 하면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가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 애가 뭘 사서 갔는데 한참 후에 부모가 망가뜨린 물건을 내밀며 왜 이런 불량품을 속여 파느냐고 화내는 사람. 술 먹고 와서 가게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었던 사람.
종종 아이들이 물건을 훔칠 때가 있어요. 걸려서 부모한테 연락하면 내 애는 착한데 나쁜 친구 때문이라고 하는 부모. 그런데 아이가 이상하면 꼭 엄마한테 문제점이 있더라고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그래요. 언젠가 초등학생 세 명이 들어왔는데 하나가 날 붙잡고 뭘 물어보는 중에 둘이 물건을 가지고 도망간 적이 있어요. 다른 손님들도 가게에 있었어요. 냅다 뛰어서 이백 미터쯤 쫓아갔어요. 둘의 배낭을 양손으로 잡았죠. 끌고 와서 부모님에게 전화했는데 엄마가 와서요, 애를 옆에 세워두고 무릎을 꿇고 나한테 싹싹 빌더라고요. 뭐 하는 거냐고 했더니 애가 이걸 보고 ‘아,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저렇게 빌어야 하는구나.’하고 느끼도록 교육하는 중이라는 거예요. 어떤 부모는 아이가 물건 훔치는 동안 대체 뭐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놀라운 손님들
예전에, 여러 번 물건을 슬쩍슬쩍 가져가는 초등학생이 있어요. 어느 날 그 애 엄마 연락처를 물어 만났죠. 엄마가 와서 너무 놀랐다면서 상상도 못 했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갔어요. 한참 지난 다음에 엄마 혼자 와서는 그때 집에 가서 아이 책상 서랍을 뒤져봤더니 사주지 않은 물건들이 여러 개 나오더래요. 돈 2만 원을 주면서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아이랑 상담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 친구나 가게주인 탓을 하는데 이 엄마는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요만한 자식을 데리고 찾아왔어요. 아이에게 어렸을 때 자주 왔던 곳이라며 “너 뭐 살래?” 하니까 “엄마는 어릴 때 뭐 샀어?” 하며 둘이 대화를 재밌게 하더라고요. 보니까 ‘그래, 저렇게 잘 컸으면 됐다’ 싶고 흐뭇하더라고요.
또 한 엄마가 생각나네. 학원 끝나는 시간이면 초등학교 아이에게 5천 원을 쥐여주고 너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 오라 하고 엄마는 가게 밖에서 기다려요. 아이가 뭘 고를지 망설이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냥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5천 원을 맞추려고 아이가 온갖 물건을 꺼내서 얼마에요, 얼마에요 묻는데 사실 나도 일일이 대답해 주느라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어제 산 걸 또 사든 똑같은 걸 두 개 사든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이가 스스로 5천 원으로 어떻게 사야 할지 깨우칠 때까지 그걸 했어요. 현명한 엄마였죠. 어느 순간이 되니까 그 5천 원의 가치를 스스로 알더라고요.
이 매력적이고 이상한 나라는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아주려나?
“내일 문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이 문방구에요. 동네 문방구는 이제 사양 업종이니까. 그냥 하던 거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기서 수입이 안나요. 프린터 유지랑 전화비 전기세 임대료 내고 지난달에는 6만 원 적자였어요. 방학이나 긴 연휴에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급할 때 뛰어와서 한 개 살 수 있는 거. 여기서는 그럴 수 있지. 근데 오랜 세월 하다 보니까 일곱 시에 문 열고 장사하고 일곱 시에 퇴근하는 게 내 몸에 특화되어 버렸어요.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하겠나,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도 이상하고 일단 칠십까지는 가볼 거예요.”
문구점을 그만둔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이 안에서 수십 년 똑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다음에 뭘 할지 생각은 못 해봤어요. 광화문 광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의도 빌딩도 뉴스에서만 봤고. 그래도 나는 늙어서 너무 좋아요. 이십 대 말에 이 가게를 시작했는데, 결혼을 일찍 해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먹여 살려야 하고 부모님 부양도 해야 하니 맨날 동동거렸지요.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손님이 우리 가게 안 온다. 그러면 어떡하나, 이런 마음 때문에 손님이 맨날 무서웠어요. 그게 오십 대까지 그랬어. 애들은 그나마 조금 나은데 나이 든 사람들은 조심스러워 앉은 죄인처럼 지낸 것 같아요. 항상 그러다 내가 나이 먹고 그사이에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다 컸으니까, 맘이 얼마나 편한지. 지금은 가게 문 여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어요. 일곱 시에 집에서 나와요. 저녁 여덟 시 반이면 가게 문을 닫고 동네 한 바퀴 걷고 집에 들어가요. 지금이 좋아요.”
38년 동안 문구점 하시면서 알게 된 것은 뭘까요?
“이건 꼭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첫째는 여자도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거. 또 하나는 잘못된 아이는 잘못된 엄마가 만든다는 거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문구점, 그 작은 공간에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삶을 일구셨던 강인한 여성이자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을 본받아 “늙어서 참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어진다.

기록명 : “나의 작고 단단한 세상”
날짜 : 2024년 9월 23일
대상 : 종로구 38년 역사의 문방구
주제 : 종로의 이웃
기록 : 최대용
종로의 가장 북쪽에 북한산 경사를 따라 들어선 동네. 시내로 나가려면 필시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 납작한 일 층짜리 건물들에 작은 점포들이 조르륵 길 따라 앉아 있는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읍내다. 그곳에 휴일 없이 늘 열려있는 문구점이 하나 있다. 통나무를 뚝 자른 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일어나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인터뷰 전에 음료수 하나를 권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그러면서 오늘 어떤 손님이 주고 갔다며 이쁜 사과를 깎아 주셨다.
“먹을 걸 갖다주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추석이라고 과일이랑 강정이랑 송편 이쁘게 담아서 가져온 분도 있지, 롤케이크도 누가 가져왔지, 반찬 가져다주는 손님도 있고. 아, 케이크 드실래요?”
대답도 들을 새 없이 후딱 일어서셨다. 통나무 앉았던 자리가 반질반질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저 자리에 앉아 계셨던 걸까?
“86년도 6월부터 가게를 시작했어요. 38년 됐나 봐. 주위에 학교가 많아요. 학생들로 북적거리다 한 7~8년 전부터 한산해졌어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면서 학교에서 문구를 다 주니까 요즘은 뭐 사서 갈 일이 없지요. 동네 작은 문구점들이 점점 없어지고 사무실들은 인터넷에서 배달시키고.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먼 데서 일부러 문구점을 찾아서 이 동네까지 오는 손님들도 있어요. 문방구에만 있는 물건을 사러.”
문방구에만 있는 물건이란 무엇일까? 바닥에서부터 진열된 총천연색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팽이, 비눗방울, 캐릭터 카드, 플라스틱 반지, 돼지저금통 같은 걸까?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손님이 다녀갔다. 한 여학생은 코팅을 했다. 가격은 천원. 아저씨는 팩스를 받으러 왔다. 이것도 천원. 볼이 빨개진 아이들이 캐릭터 카드를 사고 조그만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와서 고민 끝에 작은 장난감 하나를 골랐다. 1,700원하고 500원.
교통카드에서 너무 빨리 돈이 나가버렸다는 할아버지는 버스 하차할 때만 한 번 카드를 찍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긴 설명 끝에 이해했다.
여기는 이상한 나라다. 어린이가 문구점을 들어설 때는 두근거리기 마련이다. 온갖 신기하고 자잘한 물건들이 눈높이에서 반짝이며 유혹한다. 그 많은 종류의 필기구 앞에 서면 긴장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뭔가 애매할 때는 알때까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장님은 이 이상한 나라의 주인이다. 이상한 나라는 없는 게 없다. 있는 거 빼고 다 있는 게 문구점이다. 커다란 복사기 뒤 사장님의 부언을 들으니 역시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전에는 전화카드랑 복권이랑 우표도 다 문구점에서 팔았다니까요.”
나의 작고도 단단한 세상을 만들다
“내가 이십 대 후반에 가게를 시작했어요. 매일 일곱 시에 문 열고 열 시에 닫았죠. 자식들한테 항상 미안한 게 학교에 한 번도 못 간 거. 소풍, 운동회도 가 본 적이 없고 입학식, 졸업식도 못 갔어요. 그때는 가게 문 닫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배달해 주는 물건으로는 손님들 요구를 일일이 맞출 수가 없어서 밤 열 시에 문 닫고 새벽에 물건 사러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다녔어요. 가게에 실어다 놓고 새벽 두 시에 집에 가요.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애들 도시락을 쌌어요. 항상 알람 세 개를 맞춰놨어요. 오 분 간격으로. 하나를 끄면 방문 뒤에서 울려요. 그럼, 억지로 기어가서 끄고, 그다음에는 부엌에서 울려요. 그러면 부엌으로 가서 잠 깨면서 밥하는 거지요. 그렇게 살았어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다
“6남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열네 살부터 공장에 다녔죠. 기숙사비, 식비 제외하고 나온 월급을 약간의 생활비 빼고 전부 고향으로 보냈어요. 그게 당연한 시대였어요. 공장은 3교대로 24시간 돌아갔어요. 어린 나이에 돈 버는 게 너무 힘들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러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어요. 결혼하면 잘살게 되겠지, 했는데 6남매 장남이더라고요. 나는 결혼해서 친정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시집 식구가 줄을 서게 된 꼴이지. 홀시아버지에 다섯 동생. 경상도 말로 장남은 부모 멧젤이다, 그래요. 부모 대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기제사 명절 제사 다 지내고 다섯 명을 오 년 동안 매해 결혼을 시켰어요. 돈이란 걸 쥐어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
“손아래 동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시동생이 자기가 제사 못 지낸대요. 왜 못 지내냐고 했더니 남자고 애들도 어려서 못 한대요. 그래서 동서 제사도 내가 지냈어요. 우린 전세에서 월세로 점점 가세가 기울었어요.
“그러다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조금씩이라도 모으고 돈을 만들 수 있었어요. 하다못해 그때는 집도, 전화도 다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었어요. 여자들이 대부분 혼자 경제생활을 하지 못해서 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내가 장사를 안 했으면 여태 집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겠어요? 키울 때는 고생스러웠지만 아이들은 유학까지 보냈어요. ”
세상에 만상에 진상 손님들
다른 손님이 있어도 자기를 무조건 최우선으로 대우해달라는 손님이 있어요. 손님이랑 얘기하는데 누가 중간에 물어봐서 “잠깐만 보고 있으세요.”, 하면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가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 애가 뭘 사서 갔는데 한참 후에 부모가 망가뜨린 물건을 내밀며 왜 이런 불량품을 속여 파느냐고 화내는 사람. 술 먹고 와서 가게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었던 사람.
종종 아이들이 물건을 훔칠 때가 있어요. 걸려서 부모한테 연락하면 내 애는 착한데 나쁜 친구 때문이라고 하는 부모. 그런데 아이가 이상하면 꼭 엄마한테 문제점이 있더라고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그래요. 언젠가 초등학생 세 명이 들어왔는데 하나가 날 붙잡고 뭘 물어보는 중에 둘이 물건을 가지고 도망간 적이 있어요. 다른 손님들도 가게에 있었어요. 냅다 뛰어서 이백 미터쯤 쫓아갔어요. 둘의 배낭을 양손으로 잡았죠. 끌고 와서 부모님에게 전화했는데 엄마가 와서요, 애를 옆에 세워두고 무릎을 꿇고 나한테 싹싹 빌더라고요. 뭐 하는 거냐고 했더니 애가 이걸 보고 ‘아,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저렇게 빌어야 하는구나.’하고 느끼도록 교육하는 중이라는 거예요. 어떤 부모는 아이가 물건 훔치는 동안 대체 뭐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놀라운 손님들
예전에, 여러 번 물건을 슬쩍슬쩍 가져가는 초등학생이 있어요. 어느 날 그 애 엄마 연락처를 물어 만났죠. 엄마가 와서 너무 놀랐다면서 상상도 못 했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갔어요. 한참 지난 다음에 엄마 혼자 와서는 그때 집에 가서 아이 책상 서랍을 뒤져봤더니 사주지 않은 물건들이 여러 개 나오더래요. 돈 2만 원을 주면서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아이랑 상담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 친구나 가게주인 탓을 하는데 이 엄마는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요만한 자식을 데리고 찾아왔어요. 아이에게 어렸을 때 자주 왔던 곳이라며 “너 뭐 살래?” 하니까 “엄마는 어릴 때 뭐 샀어?” 하며 둘이 대화를 재밌게 하더라고요. 보니까 ‘그래, 저렇게 잘 컸으면 됐다’ 싶고 흐뭇하더라고요.
또 한 엄마가 생각나네. 학원 끝나는 시간이면 초등학교 아이에게 5천 원을 쥐여주고 너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 오라 하고 엄마는 가게 밖에서 기다려요. 아이가 뭘 고를지 망설이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냥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5천 원을 맞추려고 아이가 온갖 물건을 꺼내서 얼마에요, 얼마에요 묻는데 사실 나도 일일이 대답해 주느라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어제 산 걸 또 사든 똑같은 걸 두 개 사든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이가 스스로 5천 원으로 어떻게 사야 할지 깨우칠 때까지 그걸 했어요. 현명한 엄마였죠. 어느 순간이 되니까 그 5천 원의 가치를 스스로 알더라고요.
이 매력적이고 이상한 나라는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아주려나?
“내일 문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이 문방구에요. 동네 문방구는 이제 사양 업종이니까. 그냥 하던 거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기서 수입이 안나요. 프린터 유지랑 전화비 전기세 임대료 내고 지난달에는 6만 원 적자였어요. 방학이나 긴 연휴에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급할 때 뛰어와서 한 개 살 수 있는 거. 여기서는 그럴 수 있지. 근데 오랜 세월 하다 보니까 일곱 시에 문 열고 장사하고 일곱 시에 퇴근하는 게 내 몸에 특화되어 버렸어요.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하겠나,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도 이상하고 일단 칠십까지는 가볼 거예요.”
문구점을 그만둔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이 안에서 수십 년 똑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다음에 뭘 할지 생각은 못 해봤어요. 광화문 광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의도 빌딩도 뉴스에서만 봤고. 그래도 나는 늙어서 너무 좋아요. 이십 대 말에 이 가게를 시작했는데, 결혼을 일찍 해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먹여 살려야 하고 부모님 부양도 해야 하니 맨날 동동거렸지요.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손님이 우리 가게 안 온다. 그러면 어떡하나, 이런 마음 때문에 손님이 맨날 무서웠어요. 그게 오십 대까지 그랬어. 애들은 그나마 조금 나은데 나이 든 사람들은 조심스러워 앉은 죄인처럼 지낸 것 같아요. 항상 그러다 내가 나이 먹고 그사이에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다 컸으니까, 맘이 얼마나 편한지. 지금은 가게 문 여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어요. 일곱 시에 집에서 나와요. 저녁 여덟 시 반이면 가게 문을 닫고 동네 한 바퀴 걷고 집에 들어가요. 지금이 좋아요.”
38년 동안 문구점 하시면서 알게 된 것은 뭘까요?
“이건 꼭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첫째는 여자도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거. 또 하나는 잘못된 아이는 잘못된 엄마가 만든다는 거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문구점, 그 작은 공간에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삶을 일구셨던 강인한 여성이자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을 본받아 “늙어서 참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