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창신동 라디오덤 조은형 국장
○ 날짜: 2025년 7월 17일 (목)
○ 장소: 창신동 라디오덤
○ 기록: 류보람(글), 박현정(사진)
라디오라는 음성 매체와 주민의 만남, ‘세계 유일의 봉제인 방송’이라니. 평범한 마을 미디어라 부르기엔 미술관의 어떤 작품보다 더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로 느껴진다. 그 라디오덤이 자리한 창신동은 낙산 비탈길을 따라 형성된 산동네다. 동대문과 인접해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으며 한때는 주택과 아파트가 얽힌 골목 사이 공장들의 이색적인 풍경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Made in 창신’이라는 말이 품질을 보증하던 시절 이곳 봉제인들의 기술과 자부심은 단연 돋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이곳에는 ‘도시재생’이 시작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봉제인들과 지역아동센터, 대학생활동연대 등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 문화가 싹트고 있었다. 라디오덤도 2012년 지역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삶터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의 축적된 시간과 노력이 2014년이 되어서야 ‘서울시 제1호 도시재생지역 지정’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된 것이다.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과는 달리 주민 주도의 점진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지향한다. 그렇다 보니 기나긴 세월의 틈을 촘촘히 메워온 이들의 헌신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24년 11월, 서울시는 중단되었던 창신동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4,5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안팎에서는 여전히 찬반의 목소리가 팽팽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애써 지켜온 것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한 불안감은 피할 수 없다. 그 틈을 타, 도시재생은 실패였다는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누군가에겐 삶이었던 10년의 시간이 무참히 지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무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가장 잔혹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삶은 결코 직선이 아니거늘. 이 짧은 글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없지만, 시간 속에 존재해온 수많은 움직임과 스며든 삶의 온기, 그로 인한 변화만큼은 반드시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토록 소중한 10년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표면 아래, 긴 세월을 거슬러 그 시작을 다시 더듬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주민들의 발자취를 따라 조금씩 마을을 오르다 보면, 창신동 언덕 중턱, 개발과 보존의 소용돌이 속 굽이굽이 깎아지른 비탈길 사이로 주민 공간 ‘회오리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 2층, 라디오덤을 찾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고 있어요. 그간 함께 사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좀 아팠습니다. 또 미디어 환경에도 변화가 찾아왔고요. 모두를 향해 애썼던 마음을 도로 잡고, 잠시 숨을 고르며 지냈습니다. 마을 미디어로서의 덤은 잠시 쉬어 가지만,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공동체 활동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 협업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요. 모든 걸 함께할 수는 없는 실정이지만,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다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 미디어 이야기는 들었지만, 평생학습공동체는 조금 생소합니다.
평생학습공동체 활동은 성인문해학습자들이 글을 배우는 활동을 포함한 지역민의 평생학습을 함께 도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현재는 검정고시 준비반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라디오덤은 마을 미디어로 출발했지만, 지역 기반의 여러 공동체 조직과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조직, 기획, 운영해 왔어요. 평생학습공동체도 생계를 위해 배움의 시기를 놓치신 지역의 봉제인 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셨던 ‘방송통신고 졸업생 모임’과의 만남을 통해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은 라디오지만 그야말로 미디어 본연의 역할인 매개를 실천한 셈이죠.

미디어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기능도 하셨던 것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일방적인 교육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서울 ‘어머니 학교’에서 글쓰기 활동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나눌 수 있도록 문집을 엮어내던 활동은 저희 미디어와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방송에서 <글밥 먹는 날>이라는 코너를 기획해서 어머니 학생들의 글을 모아 소개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학교 교사들이 직접 진행하고 학생들이 출연하여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는 어머니들의 일상을 하나의 대본으로 엮고,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여 합동 리딩을 하는 방송극 형태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개인의 서사를 기록하고 또 라디오라는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매체를 통해 용기 낸 어머니들이 직접 이야기하고, 드러내고, 함께 공유하면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다시 우리 속 나를 보는 방식으로 시야를 확장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그런 교육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성장을 도우며 라디오덤도 그 지평을 넓혀 왔다고 할 수 있고요.

방송극이라니, 정말 멋지네요. 라디오로 예술을 만드신 거군요!
하하… 예술은 잘 몰라요. 전문 예술가도 아니고요. 지역에서 연주회나 전시회를 진행하고, 얼마 전에는 잘 알던 연출님의 제안으로 지역민의 이야기를 모아 전문 배우들과 낭독극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처음부터 라디오를 기획한 것도, 예술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아! 그런데 그런 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또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질문은 마음 한편에 늘 있었던 것 같네요. 생각해 보니 첫 방송의 제목도 <예술은 아무나 한다>였어요. 저도 그랬고, 이 지역도 그렇고, 워낙 생계를 위한 삶들이 모인 곳이라 밥 먹고 살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밥을 먹나…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거든요. 삶이 좀 퍽퍽하다 싶었어요. 그래도 우리 삶에 아름다운 바람 한 줄기쯤은 불었으면 좋겠다… 했고요. 아마도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의도하고, 기획하고, 실행한다면 라디오덤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삶이 요청하는 순간순간에 반응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모아진 사는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연극보다 더 극적인 ‘삶’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특별히 라디오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사실 처음에 상상했던 건 중창단이었어요. 노래는 잘 못하지만 함께 이루는 하모니에 대한 열망이 있기도 했고요. 헌데 직접 가르칠 수도 없고 음악은 특히나 전문 강사를 모셔야 하니 이래저래 고민하던 차에 마을로 미디어 강사를 보내주는 공모사업을 알게 된 겁니다. 끌리듯 지원해서 털컥 선정이 되었고, 그렇게 당시 막 태동하던 마을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수업을 듣고 나니 매력에 빠져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미디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당시 영상제작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영상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직장 다니면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라디오는 퇴근하고 시도하기에도 부담이 없고, 봉제공장 주민들이 일을 하며 즐기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으니 살면서 그리도 찾고 싶었던 바람 한 줄기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죠.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직장에 계셨다고요. 꽤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어요. 시작부터 지원사업을 소개해 주고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도와주셨던 ‘미디액트’라는 단체가 있었고요. 함께 미디어 강의를 수료했던 네 명의 의지가 모였고, 또 무엇보다 강의 중 마이크 앞에 앉아 자기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들려주셨던 분들이 계셨어요. 사실 그걸 보고 나니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빛날 수 있는 자리라면, 이것만큼은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해, 두 해 이어가다 보니 지역의 봉제인을 중심으로한 방송이 자리 잡았고, 어머니들, 청년들, 그리고 여러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요.
말씀하시는 빛나던 순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당시 초대석 체험으로 주민이 직접 ‘나의 인생 음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서 순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걸 목격했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며 복받쳐 오르는 눈물, 희열, 떨림… 뭐 그런…. 말하자면 한 사람이 자기 서사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었을 때 발하는 엄청난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빛이에요. 이 빛을 본 나는 빚진 자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 생각만 들었어요.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그때. 이 특별한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여기서 함께 해보자 하고요.

그 후로 10여 년, 지역이나 사람들 사이에 실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가 제 삶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고요. 또 지역의 많은 분들이 자기 생의 주인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목격했어요. 대표적으로 봉제인에서 방송진행자로 나아가 지역 활동가로 성장한 분들이 계셨고요. 이후에도 그분들은 지역의 매개자이자 촉진자로서 공동체의 관계망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신 거로 알아요.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이 전환되는 과정을 함께하며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꼈어요. 어찌 보면 라디오덤 활동은 그동안 발현되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과 말해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일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들을 글로는 도저히 다 담을 자신이 없어, 이쯤에서 글을 맺으려 한다.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라디오덤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radiodum2013)를 권한다. 예술은 아무나 한다? 예술인과 활동가 사이에서 방황하며 길을 찾고 있던 내게, 창신동의 라디오덤은 언제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시간은 ‘예술’이 아니라 ‘아무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저 내가 사는 주변을 살피고, 돌보고, 함께하고 싶었던 한 사람의 빛나는 마음. 그것이 시작이었다. 요즘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참여’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는, 그럴듯한 포장 속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도들에 지쳐서일까.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말하기엔, 덤의 시간은 그 어떤 예술보다 더 완전하고 빛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봉제인 ‘아무나’의 현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온 진심. 나의 고민을 먼저 지나온, 마치 초월적 존재처럼 그는 참으로 빛나 보였다. 3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이어진 질문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와 또랑한 목소리를 끝내 놓지 않았던 그만의 섬세한 배려는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하다. 소리에 빛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라디오덤을, 그가 소중히도 밝혀온 그 빛을 오래도록 동경할 것 같다.
○ 대상: 창신동 라디오덤 조은형 국장
○ 날짜: 2025년 7월 17일 (목)
○ 장소: 창신동 라디오덤
○ 기록: 류보람(글), 박현정(사진)
라디오라는 음성 매체와 주민의 만남, ‘세계 유일의 봉제인 방송’이라니. 평범한 마을 미디어라 부르기엔 미술관의 어떤 작품보다 더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로 느껴진다. 그 라디오덤이 자리한 창신동은 낙산 비탈길을 따라 형성된 산동네다. 동대문과 인접해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으며 한때는 주택과 아파트가 얽힌 골목 사이 공장들의 이색적인 풍경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Made in 창신’이라는 말이 품질을 보증하던 시절 이곳 봉제인들의 기술과 자부심은 단연 돋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이곳에는 ‘도시재생’이 시작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봉제인들과 지역아동센터, 대학생활동연대 등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 문화가 싹트고 있었다. 라디오덤도 2012년 지역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삶터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의 축적된 시간과 노력이 2014년이 되어서야 ‘서울시 제1호 도시재생지역 지정’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된 것이다.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과는 달리 주민 주도의 점진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지향한다. 그렇다 보니 기나긴 세월의 틈을 촘촘히 메워온 이들의 헌신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24년 11월, 서울시는 중단되었던 창신동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4,5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안팎에서는 여전히 찬반의 목소리가 팽팽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애써 지켜온 것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한 불안감은 피할 수 없다. 그 틈을 타, 도시재생은 실패였다는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누군가에겐 삶이었던 10년의 시간이 무참히 지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무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가장 잔혹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삶은 결코 직선이 아니거늘. 이 짧은 글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없지만, 시간 속에 존재해온 수많은 움직임과 스며든 삶의 온기, 그로 인한 변화만큼은 반드시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토록 소중한 10년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표면 아래, 긴 세월을 거슬러 그 시작을 다시 더듬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주민들의 발자취를 따라 조금씩 마을을 오르다 보면, 창신동 언덕 중턱, 개발과 보존의 소용돌이 속 굽이굽이 깎아지른 비탈길 사이로 주민 공간 ‘회오리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 2층, 라디오덤을 찾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고 있어요. 그간 함께 사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좀 아팠습니다. 또 미디어 환경에도 변화가 찾아왔고요. 모두를 향해 애썼던 마음을 도로 잡고, 잠시 숨을 고르며 지냈습니다. 마을 미디어로서의 덤은 잠시 쉬어 가지만,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공동체 활동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 협업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요. 모든 걸 함께할 수는 없는 실정이지만,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다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 미디어 이야기는 들었지만, 평생학습공동체는 조금 생소합니다.
평생학습공동체 활동은 성인문해학습자들이 글을 배우는 활동을 포함한 지역민의 평생학습을 함께 도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현재는 검정고시 준비반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라디오덤은 마을 미디어로 출발했지만, 지역 기반의 여러 공동체 조직과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조직, 기획, 운영해 왔어요. 평생학습공동체도 생계를 위해 배움의 시기를 놓치신 지역의 봉제인 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셨던 ‘방송통신고 졸업생 모임’과의 만남을 통해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은 라디오지만 그야말로 미디어 본연의 역할인 매개를 실천한 셈이죠.
미디어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기능도 하셨던 것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일방적인 교육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서울 ‘어머니 학교’에서 글쓰기 활동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나눌 수 있도록 문집을 엮어내던 활동은 저희 미디어와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방송에서 <글밥 먹는 날>이라는 코너를 기획해서 어머니 학생들의 글을 모아 소개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학교 교사들이 직접 진행하고 학생들이 출연하여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는 어머니들의 일상을 하나의 대본으로 엮고,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여 합동 리딩을 하는 방송극 형태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개인의 서사를 기록하고 또 라디오라는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매체를 통해 용기 낸 어머니들이 직접 이야기하고, 드러내고, 함께 공유하면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다시 우리 속 나를 보는 방식으로 시야를 확장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그런 교육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성장을 도우며 라디오덤도 그 지평을 넓혀 왔다고 할 수 있고요.
방송극이라니, 정말 멋지네요. 라디오로 예술을 만드신 거군요!
하하… 예술은 잘 몰라요. 전문 예술가도 아니고요. 지역에서 연주회나 전시회를 진행하고, 얼마 전에는 잘 알던 연출님의 제안으로 지역민의 이야기를 모아 전문 배우들과 낭독극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처음부터 라디오를 기획한 것도, 예술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아! 그런데 그런 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또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질문은 마음 한편에 늘 있었던 것 같네요. 생각해 보니 첫 방송의 제목도 <예술은 아무나 한다>였어요. 저도 그랬고, 이 지역도 그렇고, 워낙 생계를 위한 삶들이 모인 곳이라 밥 먹고 살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밥을 먹나…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거든요. 삶이 좀 퍽퍽하다 싶었어요. 그래도 우리 삶에 아름다운 바람 한 줄기쯤은 불었으면 좋겠다… 했고요. 아마도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의도하고, 기획하고, 실행한다면 라디오덤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삶이 요청하는 순간순간에 반응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모아진 사는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연극보다 더 극적인 ‘삶’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특별히 라디오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사실 처음에 상상했던 건 중창단이었어요. 노래는 잘 못하지만 함께 이루는 하모니에 대한 열망이 있기도 했고요. 헌데 직접 가르칠 수도 없고 음악은 특히나 전문 강사를 모셔야 하니 이래저래 고민하던 차에 마을로 미디어 강사를 보내주는 공모사업을 알게 된 겁니다. 끌리듯 지원해서 털컥 선정이 되었고, 그렇게 당시 막 태동하던 마을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수업을 듣고 나니 매력에 빠져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미디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당시 영상제작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영상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직장 다니면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라디오는 퇴근하고 시도하기에도 부담이 없고, 봉제공장 주민들이 일을 하며 즐기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으니 살면서 그리도 찾고 싶었던 바람 한 줄기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죠.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직장에 계셨다고요. 꽤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어요. 시작부터 지원사업을 소개해 주고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도와주셨던 ‘미디액트’라는 단체가 있었고요. 함께 미디어 강의를 수료했던 네 명의 의지가 모였고, 또 무엇보다 강의 중 마이크 앞에 앉아 자기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들려주셨던 분들이 계셨어요. 사실 그걸 보고 나니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빛날 수 있는 자리라면, 이것만큼은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해, 두 해 이어가다 보니 지역의 봉제인을 중심으로한 방송이 자리 잡았고, 어머니들, 청년들, 그리고 여러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요.
말씀하시는 빛나던 순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당시 초대석 체험으로 주민이 직접 ‘나의 인생 음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서 순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걸 목격했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며 복받쳐 오르는 눈물, 희열, 떨림… 뭐 그런…. 말하자면 한 사람이 자기 서사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었을 때 발하는 엄청난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빛이에요. 이 빛을 본 나는 빚진 자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 생각만 들었어요.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그때. 이 특별한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여기서 함께 해보자 하고요.
그 후로 10여 년, 지역이나 사람들 사이에 실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가 제 삶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고요. 또 지역의 많은 분들이 자기 생의 주인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목격했어요. 대표적으로 봉제인에서 방송진행자로 나아가 지역 활동가로 성장한 분들이 계셨고요. 이후에도 그분들은 지역의 매개자이자 촉진자로서 공동체의 관계망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신 거로 알아요.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이 전환되는 과정을 함께하며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꼈어요. 어찌 보면 라디오덤 활동은 그동안 발현되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과 말해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일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들을 글로는 도저히 다 담을 자신이 없어, 이쯤에서 글을 맺으려 한다.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라디오덤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radiodum2013)를 권한다. 예술은 아무나 한다? 예술인과 활동가 사이에서 방황하며 길을 찾고 있던 내게, 창신동의 라디오덤은 언제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시간은 ‘예술’이 아니라 ‘아무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저 내가 사는 주변을 살피고, 돌보고, 함께하고 싶었던 한 사람의 빛나는 마음. 그것이 시작이었다. 요즘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참여’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는, 그럴듯한 포장 속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도들에 지쳐서일까.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말하기엔, 덤의 시간은 그 어떤 예술보다 더 완전하고 빛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봉제인 ‘아무나’의 현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온 진심. 나의 고민을 먼저 지나온, 마치 초월적 존재처럼 그는 참으로 빛나 보였다. 3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이어진 질문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와 또랑한 목소리를 끝내 놓지 않았던 그만의 섬세한 배려는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하다. 소리에 빛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라디오덤을, 그가 소중히도 밝혀온 그 빛을 오래도록 동경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