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박명화 (행촌동 바르게 살기 협의회장)
날짜 : 2025년 7월 2일(수)
장소 : 종로구 평동 아파트 내 커뮤니티센터
기록 : 조영남(글), 이지윤(사진)
자기 앞의 생을 가꾸어 나가기도 벅찬 시대에, 이웃을 위해 오랜 세월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행촌동 마을 대표 박명화 님을 만났다. 종로구 행촌동 바르게 살기 협의회 회장과 종로구 평동 경희궁 자이아파트 주민자치회 회장, 반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박명화 님을 통해 행촌동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종로구 행촌동의 이웃 사람들과 함께 많은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처음 시골에서 올라와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사는 종로구 행촌동에 대한 애정이 아주 많았어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저처럼 행촌동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소통하면서 살고자 하는 좋은 이웃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분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행촌동 주민자치회의 회장도 맡아서 하고, 바르게 살기위원회 회장에 선출되어 봉사하다 보니까 단체의 회원분들이 많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회원들의 좋은 의견을 모아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방향은 어떻게 활동해야 올바른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결정을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동네에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의논을 하다가 이 동네의 특징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울성곽에 맞닿아 지어져 있는 오래된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서부터 통일로 주변의 새로 지은 아파트까지 다양한 주거 환경이 산재해 있었어요.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에 거주할 당시에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홀몸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요.
어르신들께서 혼자 사시다 보니 끼니를 거르시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주부들이니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찬을 만드는 일이다.‘반찬 동아리’를 만들어서 그분들께 밥상도 차려 드리고,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드리면 그분들의 건강도 챙겨드릴 수도 있고 반찬을 매개로 댁에 방문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사는 형편도 살펴드리다 보면 외로움도 덜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20여 명의 반찬 동아리 회원들이 자체 회비를 갹출해 재료를 직접 시장에서 사다가 반찬을 만들어 대접해 드리곤 했었어요. 나중에는 행촌 공터의 텃밭이나 교남동의 도시농업센터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상추, 풋고추, 열무, 가지, 배추 등등 채소를 수확해서 반찬을 만들기도 했지요.
회원들과 함께 만든 반찬을 가지고 방문하면 어르신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고마워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하는 반찬 동아리 회원들도 뿌듯하고 기쁜 마음으로 활동했지요.
어느 해인가는 도시 텃밭에서 배추 농사가 풍년이 들어 700포기를 수확했어요. 그 배추로 김장해서 경로당에 드릴 수도 있었고, 그 외에 더 많은 어르신의 집에도 김장김치를 나눌 수가 있었지요.
통일로 주변에 새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고, 젊은 엄마들도 반찬 동아리에 함께하면서 정보에 밝은 지혜로운 주부들이 서울시에 의뢰해서 지원을 받아 봉사를 해보자고 하는 의견을 내놨어요. 그 덕분에 적은 액수지만 서울시의 지원을 받기도 했었어요.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어르신께 반찬을 나누어드리고 싶은 욕심에 회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마늘이나 고춧가루 같은 양념을 자발적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소금이나 쌀을 기부받기도 했어요.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봉사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고향이 충남 서천이라는 시골이에요. 50여 년쯤 전에 서울에 이사 와서 처음부터 살기 시작한 동네가 저 윗동네 서울성곽 바로 아래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제가 살던 고향 시골 마을 못지않게 아주 낙후된 동네였어요. 우리 집에서 나오면 작은 삼거리가 있었는데, 몇몇 이웃 어르신들이 부서진 바위 조각 같은 돌멩이 위에 앉아계시거나 마사토가 깔린 맨땅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그 모습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어느 날 집에 있는 가마니처럼 생긴 멍석을 가져다 깔아드렸어요. 그 이후에 집에 드나들며 보니 맨땅이 아니라 멍석 위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편하고 좋아 보여서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
어느 날엔 냉장고에 있는 참외를 꺼내서 깎아 드렸어요. 맛있게 잡수시니 또 좋았어요. 다음에는 수박화채도 만들어서 한 그릇씩 보시기에 퍼드리고 저도 함께 앉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배울 점도 많았고,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참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내게 뭔가 있으면 이웃과 나누고 싶고, 봉사하고 싶고, 봉사하면 내가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가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얻을 수 있는 점도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단체의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들과 함께 뭉치면 못할 일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그 시절보다 많이 잘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행촌동에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152명이고, 차상위 계층에 계신 분이 6~70명이에요. 저희 회원들이 봉사한다고 해도 그분들 모두에게 손길이 미치지는 못하겠지요. 그래도 돌아가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이제 올 때가 됐는데…’하면서 기다리고 계실 것 같아서 마음이 바빠지기도 합니다.
“회장님 올해는 뭐 맛있는 거 해줄 거야?”하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고, “너무 바쁘게 일을 무리하게 일하지는 말아요. 건강을 해치면 안 되니까”“오래오래 건강해야 좋은 일을 많이 하지” 그러면서 오히려 저와 우리 회원들의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한 단체에 3년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어떤 방법으로 반찬 동아리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끼리 회비를 내서라도 지속해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기다리고 계실 어르신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꼭 해야 할 거 같다면서 종로구 주민소통센터에 지원서를 내보자 하는 의견의 일치를 본 후에 젊은 회원 몇몇이‘반찬이랑 건강이랑’이라는 타이틀로 지원했는데 다행히 우리 단체가 선정되었어요.
올해에는 이미 고추장을 담아서 나누는 사업을 했고, 앞으로의 계획은 깻잎김치를 담아서 나누고 멸치볶음도 만들 계획입니다. 일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저는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하다고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제가 일하는 걸 말리기도 해요.
이제 저는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음식의 간을 보거나 양념의 양을 조절해 주기만 해요. 젊은 사람들이 반찬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함께 모여 배우고 만들고 반찬을 회원들과 서로 나누어 갖기도 하고 이웃과 나눔을 하기도 하면서 맛있다고 하고 행복해하니까 그게 바로 이웃과 소통하는 즐거움인 것만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시느라 주부로서 집안 살림에 소홀할 수도 있을텐데 가족들이 반대는 안 하시나요?
가족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반찬 동아리 회원들 모두 집안에서 주부로서 역할을 알뜰하게 다 해놓고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집안에서는 남편이 최고이고, 아이들이 첫째고 봉사활동이 둘째라는 생각을 합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고 밖에 나와서 봉사활동 한다고 주부로서 집안일에 소홀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 회원들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운영해 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요?
저희가 동네 10명의 어르신께 반찬 봉사를 하던 때였어요. 그분들 중에는 편찮으신 분도 계시고 자식들이 사느라 바빠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서 외로우신 분들도 계셨어요. 어르신 한 분이 우리 자식들도 못하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말벗 삼아 세상 이야기도 들려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서 갖다주고 도움도 많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깔고 계신 요 밑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주셨어요. 그동안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맛있는 거 사 먹고 건강히 지내라고 신신당부하며 돈을 주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5만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었어요. 여러 번 거절 했지만, 그동안 너무너무 고마워서 그런다고 하시면서 기어이 제 손에다 돈을 꼭 쥐여주셨어요. 거절하는 것도 어르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5만 원을 받아왔어요. 나중에 더 좋은 반찬이랑 건강한 간식거리랑 챙겨서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어느 눈이 많이 온 날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제가 몸을 좀 다쳤어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우거지 된장국도 끓이고 장조림도 부드럽게 졸이고 나물 반찬도 볶고 몇 개의 좋아하시는 반찬을 만들어 찾아갔더니 집이 비어 있었어요. 주변에 알아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저도 울고 함께 갔던 회원들도 모두 펑펑 울었어요. 작은 봉사가 그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언제나 좋은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웃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렵다, 바쁘다,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도 이렇게 이웃을 살뜰하게 챙기는 손길이 곳곳에서 펼쳐진다면 무더운 여름날 햇살이 내리쬐는 더위에도 진초록빛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길처럼 시원한 위로와 희망이 피어날 것 같다.
대상 : 박명화 (행촌동 바르게 살기 협의회장)
날짜 : 2025년 7월 2일(수)
장소 : 종로구 평동 아파트 내 커뮤니티센터
기록 : 조영남(글), 이지윤(사진)
자기 앞의 생을 가꾸어 나가기도 벅찬 시대에, 이웃을 위해 오랜 세월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행촌동 마을 대표 박명화 님을 만났다. 종로구 행촌동 바르게 살기 협의회 회장과 종로구 평동 경희궁 자이아파트 주민자치회 회장, 반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박명화 님을 통해 행촌동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종로구 행촌동의 이웃 사람들과 함께 많은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처음 시골에서 올라와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사는 종로구 행촌동에 대한 애정이 아주 많았어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저처럼 행촌동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소통하면서 살고자 하는 좋은 이웃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분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행촌동 주민자치회의 회장도 맡아서 하고, 바르게 살기위원회 회장에 선출되어 봉사하다 보니까 단체의 회원분들이 많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회원들의 좋은 의견을 모아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방향은 어떻게 활동해야 올바른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결정을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동네에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의논을 하다가 이 동네의 특징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울성곽에 맞닿아 지어져 있는 오래된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서부터 통일로 주변의 새로 지은 아파트까지 다양한 주거 환경이 산재해 있었어요.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에 거주할 당시에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홀몸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요.
어르신들께서 혼자 사시다 보니 끼니를 거르시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주부들이니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찬을 만드는 일이다.‘반찬 동아리’를 만들어서 그분들께 밥상도 차려 드리고,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드리면 그분들의 건강도 챙겨드릴 수도 있고 반찬을 매개로 댁에 방문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사는 형편도 살펴드리다 보면 외로움도 덜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20여 명의 반찬 동아리 회원들이 자체 회비를 갹출해 재료를 직접 시장에서 사다가 반찬을 만들어 대접해 드리곤 했었어요. 나중에는 행촌 공터의 텃밭이나 교남동의 도시농업센터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상추, 풋고추, 열무, 가지, 배추 등등 채소를 수확해서 반찬을 만들기도 했지요.
회원들과 함께 만든 반찬을 가지고 방문하면 어르신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고마워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하는 반찬 동아리 회원들도 뿌듯하고 기쁜 마음으로 활동했지요.
어느 해인가는 도시 텃밭에서 배추 농사가 풍년이 들어 700포기를 수확했어요. 그 배추로 김장해서 경로당에 드릴 수도 있었고, 그 외에 더 많은 어르신의 집에도 김장김치를 나눌 수가 있었지요.
통일로 주변에 새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고, 젊은 엄마들도 반찬 동아리에 함께하면서 정보에 밝은 지혜로운 주부들이 서울시에 의뢰해서 지원을 받아 봉사를 해보자고 하는 의견을 내놨어요. 그 덕분에 적은 액수지만 서울시의 지원을 받기도 했었어요.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어르신께 반찬을 나누어드리고 싶은 욕심에 회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마늘이나 고춧가루 같은 양념을 자발적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소금이나 쌀을 기부받기도 했어요.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봉사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고향이 충남 서천이라는 시골이에요. 50여 년쯤 전에 서울에 이사 와서 처음부터 살기 시작한 동네가 저 윗동네 서울성곽 바로 아래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제가 살던 고향 시골 마을 못지않게 아주 낙후된 동네였어요. 우리 집에서 나오면 작은 삼거리가 있었는데, 몇몇 이웃 어르신들이 부서진 바위 조각 같은 돌멩이 위에 앉아계시거나 마사토가 깔린 맨땅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그 모습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어느 날 집에 있는 가마니처럼 생긴 멍석을 가져다 깔아드렸어요. 그 이후에 집에 드나들며 보니 맨땅이 아니라 멍석 위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편하고 좋아 보여서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
어느 날엔 냉장고에 있는 참외를 꺼내서 깎아 드렸어요. 맛있게 잡수시니 또 좋았어요. 다음에는 수박화채도 만들어서 한 그릇씩 보시기에 퍼드리고 저도 함께 앉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배울 점도 많았고,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참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내게 뭔가 있으면 이웃과 나누고 싶고, 봉사하고 싶고, 봉사하면 내가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가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얻을 수 있는 점도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단체의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들과 함께 뭉치면 못할 일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그 시절보다 많이 잘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행촌동에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152명이고, 차상위 계층에 계신 분이 6~70명이에요. 저희 회원들이 봉사한다고 해도 그분들 모두에게 손길이 미치지는 못하겠지요. 그래도 돌아가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이제 올 때가 됐는데…’하면서 기다리고 계실 것 같아서 마음이 바빠지기도 합니다.
“회장님 올해는 뭐 맛있는 거 해줄 거야?”하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고, “너무 바쁘게 일을 무리하게 일하지는 말아요. 건강을 해치면 안 되니까”“오래오래 건강해야 좋은 일을 많이 하지” 그러면서 오히려 저와 우리 회원들의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한 단체에 3년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어떤 방법으로 반찬 동아리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끼리 회비를 내서라도 지속해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기다리고 계실 어르신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꼭 해야 할 거 같다면서 종로구 주민소통센터에 지원서를 내보자 하는 의견의 일치를 본 후에 젊은 회원 몇몇이‘반찬이랑 건강이랑’이라는 타이틀로 지원했는데 다행히 우리 단체가 선정되었어요.
올해에는 이미 고추장을 담아서 나누는 사업을 했고, 앞으로의 계획은 깻잎김치를 담아서 나누고 멸치볶음도 만들 계획입니다. 일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저는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하다고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제가 일하는 걸 말리기도 해요.
이제 저는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음식의 간을 보거나 양념의 양을 조절해 주기만 해요. 젊은 사람들이 반찬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함께 모여 배우고 만들고 반찬을 회원들과 서로 나누어 갖기도 하고 이웃과 나눔을 하기도 하면서 맛있다고 하고 행복해하니까 그게 바로 이웃과 소통하는 즐거움인 것만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시느라 주부로서 집안 살림에 소홀할 수도 있을텐데 가족들이 반대는 안 하시나요?
가족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반찬 동아리 회원들 모두 집안에서 주부로서 역할을 알뜰하게 다 해놓고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집안에서는 남편이 최고이고, 아이들이 첫째고 봉사활동이 둘째라는 생각을 합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고 밖에 나와서 봉사활동 한다고 주부로서 집안일에 소홀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 회원들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운영해 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요?
저희가 동네 10명의 어르신께 반찬 봉사를 하던 때였어요. 그분들 중에는 편찮으신 분도 계시고 자식들이 사느라 바빠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서 외로우신 분들도 계셨어요. 어르신 한 분이 우리 자식들도 못하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말벗 삼아 세상 이야기도 들려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서 갖다주고 도움도 많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깔고 계신 요 밑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주셨어요. 그동안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맛있는 거 사 먹고 건강히 지내라고 신신당부하며 돈을 주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5만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었어요. 여러 번 거절 했지만, 그동안 너무너무 고마워서 그런다고 하시면서 기어이 제 손에다 돈을 꼭 쥐여주셨어요. 거절하는 것도 어르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5만 원을 받아왔어요. 나중에 더 좋은 반찬이랑 건강한 간식거리랑 챙겨서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어느 눈이 많이 온 날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제가 몸을 좀 다쳤어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우거지 된장국도 끓이고 장조림도 부드럽게 졸이고 나물 반찬도 볶고 몇 개의 좋아하시는 반찬을 만들어 찾아갔더니 집이 비어 있었어요. 주변에 알아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저도 울고 함께 갔던 회원들도 모두 펑펑 울었어요. 작은 봉사가 그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언제나 좋은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웃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렵다, 바쁘다,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도 이렇게 이웃을 살뜰하게 챙기는 손길이 곳곳에서 펼쳐진다면 무더운 여름날 햇살이 내리쬐는 더위에도 진초록빛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길처럼 시원한 위로와 희망이 피어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