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월요일 오후 세 시, 역에서 출발합니다! (기록: 최대용)

2025-09-11
조회수 214

대상 : 부암동 수선공방 모임

날짜 : 2025년 7월 1일

장소 : 부암역

기록 : 최대용(글) ,  사진 부암역 제공 

 

자하문 고개 위에 작은 ‘역’이 있다. 월요일 오후 세 시. 역에는 출발하려는 여자들이 모여든다. 메고 온 불룩한 짐들을 풀어 벌여 놓으면 옷가지와 신발, 가방들이 나온다. 별로 쓸만하지 않은, 어딘가 모자라며 어딘가 불편하며 낡은 물건들.

여기는 에트로의 전당, 헌 것을 새것같이, 창조적인 리터치를 가해 쓸모를 만들어가는 ‘수선하는 곳’이다. 종로 기록단은 여기서 앨리스, 역장, 클라, 서옥, 경옥, 나풀, 율무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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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앨리스  우리는 지구에 더 이상 새로운 생산품은 필요 없다며 모인 여성들입니다. 종로에서 별별마을학교 교사들로 만난 것을 계기로 이후 평창‧부암동 지역 마을학교를 함께 고민하고 실험했었어요. 그러다 정옥 님이 해외봉사단으로 가게 되고 저는 새 직장이 생기고 하며 뜸해졌죠. 작년 가을에 부암역장님이 새로운 제안을 했어요.

 

역장  이번에는 ’수선할 용기’를 내어 보자고 했죠. 다들 두말없이 찬성했어요.

 

정옥  저는 귀국하고 다시 만나고도 싶었고요.

 

경옥  역장이 유명해요. 텔레비전에도 나왔어요. 버려지는 옷감들을 멋진 새로운 옷으로 만들거든요. 여기 와서 서툴지만, 같이 재봉질하고 가위질하는 게 재미있어요. 공방을 모임 장소로 사용하니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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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환경문제 앞에서 이 모임의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앨리스  보통 물건이 낡거나 고장 나면 새로 사야 한다고 쉽게 생각해요. 고쳐서 쓴다고 하면 왠지 구질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서 “그냥 사는 게 더 싸.” 이런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구멍난 양말을 걸레로 사용하는 것도 재활용이지만, 그 전에 꿰맬 생각을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양말을 꿰매던 시절에 지구는 쓰레기 몸살을 앓지는 않았을 거예요.

 

‘수선할 결심’이란 뭘까요?

 

역장  거창하게는 ‘삶의 방향 전환’이라고나 할까요? 소소한 예를 들어 본다면, 양말은 발이 시린 계절에는 신어야 하니 꼭 필요한 양말을 신중하게 사요. 신고 빨고 말리고 개던 양말이 구멍이 나면 꿰매어 좀 더 신을 수 있어요. 더 낡아 발가락 부분이 못 쓰게 되면 양말목을 잘라 핸드워머로 만드는 거예요.

 

이 시대에 그런 식으로 산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듯해요.

 

앨리스  그때그때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죠.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를 멈추는 것, 거대한 태엽의 부속품이 되기를 멈추는 것, 내가 정한 기준에 자신을 가늠하며 반성하는 것, 외로운 투쟁에서 나아가 연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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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셨던 일을 소개해 주세요.

 

경옥  이걸 보세요. (경옥은 커다란 크로스백을 들어 보였다.) 안에서 물건들이 늘 뒤죽박죽되는 거예요. 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앞뒤로 주머니를 달아보기로 했어요. 가방을 해체해서 주머니를 달고 다시 만들었어요. 가방이라는 게 해체할 수 있더라고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되었어요. 이거 매일 들고 다녀요.

 

정옥 예전에 유행했던 짧은 바지가 있었는데요, 조금만 더 길면 입겠는데 밑단이 부족해서 수선할 수가 없는 거예요. 버리려다가 무조건 들고 와서 같이 의논했어요. 색이 아예 다른 천을 덧대어 길게 만들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앨리스  너무 긴 원피스를 가져왔는데 긴 것 빼고는 마음에 드는 옷이었어요. 여름에 시원하고. 이걸 어쩔꼬? 하다가 치맛단을 깡동 잘라 치맛단에 고무줄을 넣어 새로운 디자인의 원피스로 바꾸었어요.

 

경옥  저는 위쪽 가죽은 멀쩡한데 굽이 닳은 구두 밑창을 바꿔서 신나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앨리스가 가져온 가죽 자켓이 저에게 딱 맞아서 득템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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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박한 디자인들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역장  물건 하나를 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칠 것인지 디자인을 의논해요. 디자인을 결정했어도 작업하다 중간에 변수가 생길 때도 있어요. 실수로 치마를 너무 짧게 뚝 잘라버렸을 때는 얼마나 당황했던지. 자른 천을 다시 재봉으로 이어 붙이자고 했죠. 오히려 특이한 디자인이 멋진 치마가 되었잖아요.

 

나풀  전기로 돌아가는 재봉틀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손바느질로 작업을 했어요. 속도가 느려졌는데 신기하게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어요. 서로 사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역장  하루는 이탈리아 대학생 카이라가 모임을 찾아왔어요. 제가 작년에 혼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았는데 세상 참 좁기도 하지. 이번에 한국으로 유학 오게 되었다고 연락이 온 거에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잘 찾아왔더라고요. 제가 새색시 때 입던 한복을 고쳐서 선물로 줬어요. 길이를 자른 치마와 저고리를 붙여서 한꺼번에 입을 수 있게 수선한 옷이었죠. 카이라는 그 옷을 입고 경복궁에 갈 거라며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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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었네요. 종로 밖에서도 오신다면서요?

 

율무  나풀과 저는 마포에서 바느질 모임을 하는데 여기 수선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같이 와요.

클라  저도 마포에 클라블라우라는 작업실이 있어요. 재활용품을 소재로 삼는 설치 예술을 하고 있어요. 지난번에 생일에 작업실에 찾아오셔서 축하해주시고 귀한 선물도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오, 무슨 선물이었어요?

 

클라  작업실 2층은 파티룸으로 대여하는데 홍보가 잘 안되는 것 같았거든요. 근데 그날 곳곳의 사진을 찍고 홍보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에 올려주셨어요.

앨리스 초콜릿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신 분은 클라블라우의 작업실에 찾아가 비건 초콜릿 라떼를 먹어 보시길 추천드려요.

클라 지난달 마포 여성단체연합에서 주최한 홍대 앞 친환경 부스에 참여했을 때도 같이들 와 주셨어요. 사는 지역을 넘어 앞으로 계속 협업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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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이 수선할 결심을 하고 모였으나 아직 정식 이름조차 없는 모임. 매주 월요일 세 시에 모이자고 되어있으나 갈 수 있는 시간에 가고 이만큼 했으면 됐다 싶은 시간에 나간다. 심지어 공방 주인마저도 열쇠 맡기도 먼저 나갈 때가 있다.

일 있는 사람은 빠져도 되고 모두 바쁘면 쉬어가기도 하는 느슨한 모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모임. 맞다, 이것은 홍보이다. 찾아 가신다면 열렬한 환대와 느슨함과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삶을 가위질하고 다시 엮는 재창조의 기쁨을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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