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북촌탁구 박현정 님
○ 날짜: 2025년 10월 30일 (목)
○ 장소: 북촌탁구
○ 기록: 류보람 (글, 사진)
주민들에게 ‘북촌’하면 한옥보다 먼저 ‘탁구’를 떠올릴 만큼 일상 깊숙이 스며든 우리들의 사랑방.
지나가던 나그네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도, 적적함을 달래려 들른 어르신도 잠시 머물러 마음을 채우고 가는 공간. 누군가의 상상은 이곳에서 현실이 되었고, 엉뚱한 꿈도 환대받는 우리들의 네버랜드.
여성시대 선정 ‘우리 동네 착한 가게’로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그곳이지만 새삼스럽더라도 지역민으로서의 감사와 지지를 전하는 일은 또 다른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연히 탁구하러 왔다가 한 판 놀면 팬이 되어 돌아온다는 전설의 블랙홀. 평소 가까이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있던 차에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
계동2길 4. 지하로 가는 계단 벽면, 서브하는 고양이와 받아치는 강아지, 그 모습을 보며 손뼉 치는 원숭이, 지역 고양이 작가의 위트 넘치는 그림들이 반기는 입구. 아이들이 남긴 손 편지와 귀여운 낙서, 무심하게 쌓여있으면서도 묘하게 질서를 품은 축제의 흔적들이 흥미로운 곳. 구경하며 흥얼흥얼 몇 걸음 더 내려가니 계단 끝 작은 문 속 노랗고 네모난 공간이 열린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스터와 마을 작가들의 온기가 담긴 작품들, 손때 묻은 책들이 뒤섞여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그곳. 그 다채로움의 한가운데, 언제나처럼 함박웃음을 지은 채 두 손을 연신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는 우리의 홍반장, 박현정 관장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북촌탁구는 어떤 곳인가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탁구장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당연히 탁구도 치고요. 기타, 하모니카, 바이올린 등 음악을 하고 싶은 분들의 모임 공간이자 수업 공간도 되고, 작가들의 작업실, 강의장, 스터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시시때때로 공연도 하고요.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의 임시 본부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인가요?
그럼요. 자체 프로그램이나 대관이 없는 시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편하게 들어오셔서 잠시 쉬어 가시면 됩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는 시원한 음료도 무료로 제공해 드리고 있어요. 테이블에 마련된 작은 노트에 이야기 한 줄 남기고 가셔도 되고요.
동네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학교로 오가다가 들르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엔 우르르 비를 피하러 뛰어오기도 하죠. 아이들 웃음소리가 탁구장에 울리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순간들이 이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 연주 대잔치’가 북촌탁구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행사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맞아요, 올해 꼭 8년이 됐어요. 이름 그대로예요. 누구나, 아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입니다. 노래, 악기, 태권도, 춤, 연기, 낭송 말 그대로 뭐든지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지역에서 축제는 많이 열리는데 정작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는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도 어르신도,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라도 동네 사람이라면 그들이 온전히 주목받는 순간을 만들어주자, 함께 어울려서 알아가며 박수치고 환호해 주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8년째 이어오고 계시는 힘이 대단하세요. 혹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매해 새로운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언제부턴가 행사 일마다 태풍이 몰아쳐서 2년 연속 연기한 적도 있었고요. 또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는 건 두말할 필요 없이 특별한 경험이고요.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까요.
또 2회 땐가 동네에 큰 수술을 앞둔 아이가 있었어요. 당시에 무대에 못 서니까 영상으로라도 남기고 싶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기적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퇴원하자마자 무대에 서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요. 모두가 정말 펑펑 울었어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마을이 한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또 무대에 오르고 싶어 아픔을 이겨낸 아이의 용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아무 연주’와 함께 ‘아무 영재’라는 행사도 있다고요?
그건 작년에 북촌문화센터 어린이날 행사와 연계해서 시도해 본 프로젝트였어요. 아무 연주 대잔치를 통해 처음 무대에 서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제법 진지하게 음악 하는 친구들로 성장했어요. 그중에는 영재원도 다니고 전공을 꿈꾸며 국악 중고로 진학하게 된 친구도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위한 무대를 따로 기획해서 자라는 동생들에게 동기부여도 해주고 보는 분들의 재미도 살리고 기특한 아이들의 성장도 같이 바라보는 자리가 되기도 했어요.

코로나 때도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고요.
네 코로나 당시 5인 이상 집합 금지였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쉬어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매년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기다리는 행사다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지하 탁구장에서는 연주를 하고 1층 카페와 온라인으로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했어요.
또 하나 기억나는 건, 국경 폐쇄로 호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자녀에게 가지 못해 많이 슬퍼하시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탁구장을 혼주석처럼 꾸미고 스크린을 통해 결혼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드렸어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켜드릴 수 있어 참 뭉클했답니다.
북촌탁구의 또 다른 활동으로 ‘마을 미디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인가요?
점점 사라져 가는 주민 공간으로서의 북촌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람, 공간, 기억, 사건…… 마을이 참 소중해서, 무엇 하나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안타까워 기록하고 싶었죠. 그래서 시청자 미디어 센터에 서울 방방곡곡 마을 미디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북촌 스토리 랩’이라는 주민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전문 강사님을 초빙해 기사 작성, 사진 촬영, 영상 제작까지 배우고 주민들이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북촌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함께 만든 마을 뮤직비디오도 있고, 노래도 있고, 최근 문을 닫은 오래된 가게들, 짱구네 식당과 백양세탁소 등의 기억을 저장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북촌이 가진 오래된 시간과 일상의 감정을 최대한 온전히 남기기 위한 작업입니다.

북촌 스토리 랩과 북촌탁구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북촌탁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이기도 해요. 복합문화공간을 꾸려가는 일은 문화기획자로서의 제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난 몇 년 동안 사라지는 집과 가게, 오래된 주민들의 이야기, 북촌의 일상적 풍경을 꾸준히 기록해왔어요. 또 어르신 미디어 교육을 통해 그분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찍고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이어왔고요.
그 기록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국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북촌탁구 같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북촌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고, 흘러가 버리기 쉬운 시간을 잠시라도 붙잡아 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열린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오래, 이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북촌탁구는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나요?
우선은 계속 기록하는 일을 놓지 않을 거예요. 기록은 곧 마을의 미래와 연결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소통하는 프로그램도 더 확장하고 싶어요. 북촌을 북촌답게 지켜온 저마다의 삶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고 전달될 수 있도록, 이 마을이 오래 지속되고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주민들이 스스로를 저장하고 기억할 수 있게 돕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북촌 속에서, 북촌탁구는 어떤 의미를 남겼다고 보시나요?
북촌은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어요. 집도, 가게도, 사람들도요.
처음에 보았던 북촌의 일상도, 주민들 사이에 오가던 고유한 정취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어요. 북촌탁구는 그러한 변화 사이에서 ‘북촌다움’을 마지막까지 지켜온 장소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퇴임 후 버스킹을 해보고 싶어하신다는 첫 마디를 꺼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해보세요. 북촌탁구는 언제나 열려 있어요.”
그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계동길 카페테라스에서 첫 버스킹을 하셨다. 어느 날은 나도 함께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에 용기 낸 손주들이 하나둘 올라오는 작은 순간들이 이어져 우리는 결국 가족 밴드를 만들어, 얼마 전 서울시의회상까지 받았다.
지역의 아이들, 어르신들, 그리고 한 개인의 소박한 꿈까지.
그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순간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존재를 알아보고, 찰나를 기억하며, 그 작은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힘. 그가 지닌 그 특별한 능력이 오늘의 북촌이 가진 기적이 아닐까. 낯선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공동체의 심장, 그 심장은 오늘도 마을 어딘가에서 다른 꿈을, 또 다른 관계를 천천히, 그러나 생생히도 뛰게 하고 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니, 이제는 그대도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대상: 북촌탁구 박현정 님
○ 날짜: 2025년 10월 30일 (목)
○ 장소: 북촌탁구
○ 기록: 류보람 (글, 사진)
주민들에게 ‘북촌’하면 한옥보다 먼저 ‘탁구’를 떠올릴 만큼 일상 깊숙이 스며든 우리들의 사랑방.
지나가던 나그네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도, 적적함을 달래려 들른 어르신도 잠시 머물러 마음을 채우고 가는 공간. 누군가의 상상은 이곳에서 현실이 되었고, 엉뚱한 꿈도 환대받는 우리들의 네버랜드.
여성시대 선정 ‘우리 동네 착한 가게’로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그곳이지만 새삼스럽더라도 지역민으로서의 감사와 지지를 전하는 일은 또 다른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우연히 탁구하러 왔다가 한 판 놀면 팬이 되어 돌아온다는 전설의 블랙홀. 평소 가까이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있던 차에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
계동2길 4. 지하로 가는 계단 벽면, 서브하는 고양이와 받아치는 강아지, 그 모습을 보며 손뼉 치는 원숭이, 지역 고양이 작가의 위트 넘치는 그림들이 반기는 입구. 아이들이 남긴 손 편지와 귀여운 낙서, 무심하게 쌓여있으면서도 묘하게 질서를 품은 축제의 흔적들이 흥미로운 곳. 구경하며 흥얼흥얼 몇 걸음 더 내려가니 계단 끝 작은 문 속 노랗고 네모난 공간이 열린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스터와 마을 작가들의 온기가 담긴 작품들, 손때 묻은 책들이 뒤섞여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그곳. 그 다채로움의 한가운데, 언제나처럼 함박웃음을 지은 채 두 손을 연신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는 우리의 홍반장, 박현정 관장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북촌탁구는 어떤 곳인가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탁구장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당연히 탁구도 치고요. 기타, 하모니카, 바이올린 등 음악을 하고 싶은 분들의 모임 공간이자 수업 공간도 되고, 작가들의 작업실, 강의장, 스터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시시때때로 공연도 하고요.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의 임시 본부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인가요?
그럼요. 자체 프로그램이나 대관이 없는 시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편하게 들어오셔서 잠시 쉬어 가시면 됩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는 시원한 음료도 무료로 제공해 드리고 있어요. 테이블에 마련된 작은 노트에 이야기 한 줄 남기고 가셔도 되고요.
동네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학교로 오가다가 들르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엔 우르르 비를 피하러 뛰어오기도 하죠. 아이들 웃음소리가 탁구장에 울리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순간들이 이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 연주 대잔치’가 북촌탁구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행사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맞아요, 올해 꼭 8년이 됐어요. 이름 그대로예요. 누구나, 아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입니다. 노래, 악기, 태권도, 춤, 연기, 낭송 말 그대로 뭐든지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지역에서 축제는 많이 열리는데 정작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는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도 어르신도,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라도 동네 사람이라면 그들이 온전히 주목받는 순간을 만들어주자, 함께 어울려서 알아가며 박수치고 환호해 주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8년째 이어오고 계시는 힘이 대단하세요. 혹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매해 새로운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언제부턴가 행사 일마다 태풍이 몰아쳐서 2년 연속 연기한 적도 있었고요. 또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는 건 두말할 필요 없이 특별한 경험이고요.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까요.
또 2회 땐가 동네에 큰 수술을 앞둔 아이가 있었어요. 당시에 무대에 못 서니까 영상으로라도 남기고 싶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기적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퇴원하자마자 무대에 서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요. 모두가 정말 펑펑 울었어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마을이 한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또 무대에 오르고 싶어 아픔을 이겨낸 아이의 용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아무 연주’와 함께 ‘아무 영재’라는 행사도 있다고요?
그건 작년에 북촌문화센터 어린이날 행사와 연계해서 시도해 본 프로젝트였어요. 아무 연주 대잔치를 통해 처음 무대에 서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제법 진지하게 음악 하는 친구들로 성장했어요. 그중에는 영재원도 다니고 전공을 꿈꾸며 국악 중고로 진학하게 된 친구도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위한 무대를 따로 기획해서 자라는 동생들에게 동기부여도 해주고 보는 분들의 재미도 살리고 기특한 아이들의 성장도 같이 바라보는 자리가 되기도 했어요.
코로나 때도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고요.
네 코로나 당시 5인 이상 집합 금지였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쉬어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매년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기다리는 행사다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지하 탁구장에서는 연주를 하고 1층 카페와 온라인으로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했어요.
또 하나 기억나는 건, 국경 폐쇄로 호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자녀에게 가지 못해 많이 슬퍼하시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탁구장을 혼주석처럼 꾸미고 스크린을 통해 결혼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드렸어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켜드릴 수 있어 참 뭉클했답니다.
북촌탁구의 또 다른 활동으로 ‘마을 미디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인가요?
점점 사라져 가는 주민 공간으로서의 북촌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람, 공간, 기억, 사건…… 마을이 참 소중해서, 무엇 하나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안타까워 기록하고 싶었죠. 그래서 시청자 미디어 센터에 서울 방방곡곡 마을 미디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북촌 스토리 랩’이라는 주민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전문 강사님을 초빙해 기사 작성, 사진 촬영, 영상 제작까지 배우고 주민들이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북촌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함께 만든 마을 뮤직비디오도 있고, 노래도 있고, 최근 문을 닫은 오래된 가게들, 짱구네 식당과 백양세탁소 등의 기억을 저장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북촌이 가진 오래된 시간과 일상의 감정을 최대한 온전히 남기기 위한 작업입니다.
북촌 스토리 랩과 북촌탁구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북촌탁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이기도 해요. 복합문화공간을 꾸려가는 일은 문화기획자로서의 제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난 몇 년 동안 사라지는 집과 가게, 오래된 주민들의 이야기, 북촌의 일상적 풍경을 꾸준히 기록해왔어요. 또 어르신 미디어 교육을 통해 그분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찍고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이어왔고요.
그 기록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국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북촌탁구 같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북촌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고, 흘러가 버리기 쉬운 시간을 잠시라도 붙잡아 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열린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오래, 이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북촌탁구는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나요?
우선은 계속 기록하는 일을 놓지 않을 거예요. 기록은 곧 마을의 미래와 연결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소통하는 프로그램도 더 확장하고 싶어요. 북촌을 북촌답게 지켜온 저마다의 삶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고 전달될 수 있도록, 이 마을이 오래 지속되고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주민들이 스스로를 저장하고 기억할 수 있게 돕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북촌 속에서, 북촌탁구는 어떤 의미를 남겼다고 보시나요?
북촌은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어요. 집도, 가게도, 사람들도요.
처음에 보았던 북촌의 일상도, 주민들 사이에 오가던 고유한 정취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어요. 북촌탁구는 그러한 변화 사이에서 ‘북촌다움’을 마지막까지 지켜온 장소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퇴임 후 버스킹을 해보고 싶어하신다는 첫 마디를 꺼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해보세요. 북촌탁구는 언제나 열려 있어요.”
그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계동길 카페테라스에서 첫 버스킹을 하셨다. 어느 날은 나도 함께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에 용기 낸 손주들이 하나둘 올라오는 작은 순간들이 이어져 우리는 결국 가족 밴드를 만들어, 얼마 전 서울시의회상까지 받았다.
지역의 아이들, 어르신들, 그리고 한 개인의 소박한 꿈까지.
그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순간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존재를 알아보고, 찰나를 기억하며, 그 작은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힘. 그가 지닌 그 특별한 능력이 오늘의 북촌이 가진 기적이 아닐까. 낯선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공동체의 심장, 그 심장은 오늘도 마을 어딘가에서 다른 꿈을, 또 다른 관계를 천천히, 그러나 생생히도 뛰게 하고 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니, 이제는 그대도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