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마음을 읽어 마을을 잇다 (기록: 류보람, 하민)

2025-11-21
조회수 212

○ 대상: 김현주 관장

○ 날짜: 2025년 10월 28일 (화)

○ 장소: 종로구립 도담도담 한옥도서관

○ 기록: 류보람 (글), 하민 (사진)


지역 어머니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아이 셋 키우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 관장이 되어 있었다는 그. 아이 하나 돌보기도 버거운 시대에 세 아이를 키우며 마을 활동가들의 든든한 멘토로 자리 잡기까지. 그의 삶이 책이라면, 은은하게 마음을 울리는 한 편의 장편 소설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상업과 주거가 어지럽게 뒤엉킨, 아이들 놀이터 하나 없던 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의 마음. 그 소박한 진심이 마을 도서관의 온기로 번져가기까지의 여정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세간의 찬사와 부러움, 때때로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질투까지 한데 품은 채 2025년 그가 새로 자리 잡은 종로구립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창문, 청결한 계단. 새로 개관한 곳인가 싶을 만큼 정갈한 건물은 벌써 그 소설의 몇 장면을 짐작하게 한다.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주말치고는 제법 늦은 시간인데도 책 읽는 이용객들 사이에서 쉼 없이 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491d74952457.png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지혜만들기 작은도서관에서 이곳 한옥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일주일을 꼬박 청소하고 개관한 뒤로는 부지런히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며 바삐 지냈습니다. (주 평균 5~6회 달력에 빼곡하게 가득 찬 일정표가 그의 오늘을 말해주는 듯하다)


aba0dfa14d646.png


독서문화 프로그램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구립도서관이라 그런지 일이 많으시겠어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꼭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제 성향 같아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곳 이용객들의 연령대나 수요도 다양하거든요. 예산을 한 번에 써서 큰 행사를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가능한 많은 프로그램을 열어보고, 오시는 분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싶었어요. 아직도 이 도서관이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지역 주민과의 관계를 쌓는 것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으셨을까요?

뻔한 말이지만 그저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웃음) 근데 정말 그래요. 도서관도 관장도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나씩 주어진 일에 진심을 다하고, 열심히 아이들 키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도서관에서 봉사하다 보니 사서에 관심이 생기고 그래서 공부도 틈틈이 하다 보니 기회가 열리고요.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저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됩니다. 


03a0505bca628.png


그렇다면 처음 시작이 궁금합니다.

 

첫째를 낳고 품앗이 공동 육아를 했어요. 돌아가며 아이도 봐주고 각자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나눠서 하고요. 그러다 2015년, 육아 공동체 학부모끼리 지원사업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첫 프로젝트는 종로구를 중심으로 지역 해설을 듣고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는 활동이었어요. 놀이터가 없는 마을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자 했던 게 동기가 되었고요. 


a72d9070df9a4.png


아이들 프로그램이 도서관으로 이어진 건가요?


우연이었어요.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어머니 중에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전문 강사를 모셔 사진을 배우고 사진집을 만들고 주민센터에서 전시도 하게 됐어요. 다음 해에는 사진을 배운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요. 그렇게 아이들도 사진을 찍고, 이어서 전시하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전시하며 공간을 알게 되고 여름방학에는 학교 근처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 좋겠다고 해서 마을학교 지원사업에 도전했지요. 그렇게 주민센터 강당을 빌려서 전래놀이를 했어요. 센터에서 놀다 보니 위층 작은 도서관에서 책 모임을 하게 되었고요. 아이들도 어머니들도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그게 봉사로 이어지고 운영까지 맡게 된 거죠. 

돌이켜보면 옆에서 누군가 무언가 하고 싶다 하면 한번 해보자며그 일을 현실로 만들어보자며 함께 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 학부모 지원사업, 마을학교 지원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해서 선정되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946870e5109b9.png


듣고 보니 다른 사람의 꿈을 함께 이뤄주신 거네요?


그렇게까지 거창한 건 아니에요. 다만 누군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길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함께 활동하며 보람도 많이 느꼈고요. 특히 여성들은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오가며 만나는 어머니들을 보면서 작은 일이라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분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꽃꽂이 강사 일을 하다가 아이 낳고 쉬던 분이 계셨어요. 그분을 위해 수업을 개설해 드렸죠. 한동안은 도서관에서 꽃내음 맡으며 향기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강의가 많아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빠지셨데요. 

또 다른 한 분은 아이들에게 소규모 단위로 미술을 가르치던 분이셨는데, 함께 그림책 테라피 보조강사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아예 그림책 관련 전문 강사로 성장했어요.


51614704af611.png


정말 산증인들이시네요. 공동체 활동의 가장 이상적인 방향 같아요. 혹시 지역의 변화도 있었나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저희가 처음 열었던 소규모의 마을 장터가 이제는 성곽 마을 축제로 자리 잡기도 했어요. 돗자리 음악회를 중심으로 공예, 그림, 사진 등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도 전시하고요. 예전에는 특별한 상징이 없던 동네였는데, 마을을 대표하는 축제가 생겼던 셈이었죠. 주민들이 일 년에 한 번씩 화합하는 자리가 생겼다는 게 참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갈등은 없었을까요?


제일 처음에 느낀 어려움은 정산이었어요.(웃음) 그저 학부모들과 즐겁게 모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지원사업이 되어버리니 연말에 영수증 하나하나 챙기고 정산하고 증빙하고 이런 것들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엔 못 하겠다고 했다가 실제로 한 해 쉬었죠. 그러다 다시 하게 되었을 땐 시스템도 조금 간소화되고 저도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제야 적응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용기가 생겼어요. 

공동체 사업은 늘 사람이 어렵더라고요. 어느 정도 공동의 목표를 나누는 학부모 커뮤니티 안에서는 일이 수월하게 돌아갔는데 마을 공동체 사업은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 보니 참 어렵더라고요. 한 번은 성곽 주변에 나무를 심는 사업을 했는데, 항의받은 적도 있어요. 꽃과 나무가 있으면 예쁘고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반대 의견은 미처 생각 못 했거든요. 그때 느꼈죠. 아, 세상일이 내 마음 같지 않구나.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다 필요했던 시간이었어요. 


31fe010efc6b0.png


‘작은 도서관의 위기’다 이런 말도 들리는데요.


맞아요. 공공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담당자나 정책 방향이 바뀔 때마다 영향이 큽니다. 2024년에는 아예 ‘작은 도서관을 없애겠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예산도 줄고, 속앓이를 많이 했죠. 나눈다는 마음으로 해온 일들인데 오히려 오해받거나, 진심이 왜곡되는 경험도 있었어요. 그래도 결국 남는 게 있더라고요. 이용하신 분들의 한결같은 응원도 그렇고, 오늘날 도담도담 한옥 도서관에 오게 된 것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지혜만들기 작은도서관은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라 많은 분이 방문해 주시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 마찬가지고요. SNS도 운영 중이고, 예전부터 꾸준히 찾아주시는 오랜 이용객분들도 계세요. 요즘은 멀리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만큼 도서관이 지역 안팎을 잇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인지 한자 한자 책장을 넘기는 느린 시간과 사람들이 나누는 자리의 온기가 더욱 소중하다고 믿어요. 지역 도서관의 불빛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도록 모두, 종종 놀러 오세요.


4c9aadec60cf8.png


여러 일로 조금은 지친 요즘이었다. 학부모회, 운영위원회, 성당 자모회, 지역 해설, 각종 활동과 나를 위한 공부까지…보람이라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가치를 좇으며 허덕이듯 시간을 버티는 요즘. 이 모든 배려와 나눔의 끝에 과연 답이란 게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은 정말 가능한 걸까. 답답하고 힘겨운 마음이 밀려오던 순간 스며든 그의 이야기는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며 무너진 마음을 다독인다. 

아이도 주변도 나 자신도 행복한 공동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비법은 결국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 돕고, 함께 지지해 주는 우리의 일상.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온 진심의 시간이 열어낸 오늘이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