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밥 먹고 갈래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밥상 (기록: 이경옥, 하민)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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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 창신 건강 돌봄회

날짜 : 2025년 5월 7일(수)

장소 : 동부여성문화회관 4층

인터뷰하신 분: 송배헌, 주우찬, 최은정, 박철호, 전원남, 정춘옥, 유지중

기록 : 이경옥(글), 하 민(사진)


 

도시의 소음으로 유명한 동대문을 지나면 한양성곽길 따라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고 삶의 목소리로 골목 입구부터 가득 채운다. 

고층 빌딩의 그림자 뒤로 창신동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골목길 점포를 가득 메운 음식들이 사람을 맞이하며 얼굴을 내민다. 좁디좁은 골목 사이로 바람은 천천히 흐르고, 가파른 언덕 위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쁜 숨소리를 잠시 멈추게 합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내딛는 사뿐한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오래된 봉제 공장의 기계 소리.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삶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나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따스한 봄볕을 오롯이 받으며 퇴색된 툇마루에 나와 화사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분들과 함께 노닥거려 보았다. 창신동은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놀이하듯 지그재그를 그리며 그 길을 걸으며 도착한 소박하고 정겨운 숨결을 느끼게 하는 그곳 창신동에 마실을 품은 동부여성문화센터가 하늘과 가까이 서 있었다.

 

‘수요밥상이 있는 날’이라 써진 글귀 너머로 고소한 참기름향과 많은 분들의 이야기로 공간이 꽉 차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마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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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모임에 참여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송배헌 저도 이웃건강활동가의 돌봄 대상이었어요. 그때 활동가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찾아오게 하는 곳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즉 목적은 ‘외로운 노인들을 없게 하자’ 입니다.


주우찬 이웃건강활동가님들이 노인정에 간식을 사 들고 자주 방문해 주셔서 관심을 두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사람 부자가 되어 삶의 에너지를 얻고 많은 것도 배우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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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부대표님을 보며 창신동 풍물놀이패 농악 대장이라며 추켜 세워주고 계셨다. 부대표님께서는 전혀 머쓱해하시지도 않고 환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창신 건강 돌봄회 임원 집에 있으면 누가 놀아주나요? 시간은 빨리 가는 것 같은데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요. 그래서 오게 되었어요. 와서 쭉 둘러보니 없는 것이 없고 안 하는 것이 없더라고요. 여행도 가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환하게 웃으며 환대해 주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이 늙은이들을 위한 늙은이의 공간이 어디 있겠어요? 추위와 더위에 걸어오기 힘든 나의 삶터인 이곳 창신동을 숱하게 벗어나는 것이 한 때는 목표였는데 이제는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웃건강활동가 정춘옥 (한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분을 바라보며) 제가 대신 말씀드려도 괜찮죠? 저분은 제가 모시고 왔어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집안에만 혼자 누워 계시는 빈도가 높아지고 사람을 회피하셨어요. 어떻게든 바깥으로 모시고 나와 말벗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이곳에 학교 출석하듯이 매일 아침 오고 계시지요.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마실에 와서 외로움을 잊게 되셨어요. 

 

마실 공동체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역활동가 최은정 '마실'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이나 복지관 말고 차 한잔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서로 소통하는 이웃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을 나누자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주우찬 또 있어요. 우리 나이에는 경로당이나 노인정을 많이 가죠. 저도 오랜 기간 다니며 마실 같은 공간을 꿈꾸게 되었어요. 경로당은 많은 것을 주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빈한해 보이고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텃세가 심하여 소외당하는 사람도 생겨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생겨요. 그래서 소외감과 무력감을 해소하려면 주는 것을 기다리는 사회적 약자가 되기보다는 우리가 직접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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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과 달리 남자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성과 여성은 능력과 기질이 원래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각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누어서 맡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해요.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남녀 구분하지 않고 공동으로 하는 것도 서로 갈등 없이 지속되는 이유가 되죠. 젊은 시절 남자들은 왜 이리 집안일을 여자들에게만 하라고 강요했나 몰라요. 미안하거나 고마워하지도 않고. 늘그막에 남자들이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음식을 해 주면 고맙다고 하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깨끗이 씻어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이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걷다가 힘들 때 숙인 허리를 펴며 하늘을 잠시 바라보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오게 되죠. 

 

인터뷰하는 중에도 주방에서는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시는 남자분들의 미소와 그릇의 달그락거림이 정겹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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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나요?

 

처음부터 계획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많은 분이 지속적으로 오게 하기 위해 함께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식구(食口)라는 말을 떠올렸죠. 식구라는 단어는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의 의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수요 밥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먹기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체조와 금요 산책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함께 하고 싶지만,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분들이 생겨 수요 통증 교실을 만들었죠. 이처럼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커요.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혼자 챙기지 못하는 생일을 함께 축하 모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한 달에 한 번씩 장수생일상 프로그램을 마련했어요. 또한, 고령화 인구가 증가한다는 사회적 이슈의 주체자인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우리의 문제를 사회와 자녀들의 부담과 짐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이와 같이 우리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매일이 새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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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의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요?


마실을 살아있게 하는 실질적 운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많은 분들이 역할을 나누어서 하고 있어요. 우선, 마실 공동체가 추대한 대표님과 부대표님은 전체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의 중심축이고, 공동체가 갈등 없이 나아갈 수 있는 협치 조정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님은 발이 넓은 분이라서 혼자서는 가기 힘든 곳과 남이 가지 않은 곳을 찾아 금요 산책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마실의 시설과 텃밭을 관리해 주시는 MID아파트의 3인방 중의 한 분인 관리부장님과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 주시는 유지중 관리부차장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은행원 출신으로 자원봉사를 해 주시는 재정을 담당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곳 마실은 그곳에 오는 모든 분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잊지 않고 꼭 가야 할 하루의 일과로 굳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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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이야기하는 중에도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또 누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여러 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잡음이 아니라 공동체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경제적 운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공간 임대료는 보건소에서 지원해 주고 있고, 2025년부터는 창신건강돌봄 마을 단체가 세워져 자립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해 공동체 회원이 내는 것은 연회비 오천 원과 수요 밥상 모임을 위한 월회비 만 원입니다. 또한 자체적으로 아나바다 장터를 운영하여 작동되지 않는 전자제품 등을 수거한 후 회원들이 수리하여 판매한 금액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빈 병과 헌 옷, 생활용품을 팔아서 36,000원을 벌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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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께서 부대표님이 있으니 벌 수 있는 것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도 부대표님이 수리한 선풍기 중 한 대를 구입했다.

 

마실공동체 운영자는 종로구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을 신청하여 다양한 행사 경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부 또는 회원들이 기부물품과 후원금을 보내줍니다. 회원이 기부한 식재료로 식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고도 30명 내외로 참여하는 수요 밥상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우리가 노력하여 의미 있게 얻게 된 돈과 물품이라서 모두 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실 공동체를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 또는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곳에 사시는 분들께 바라는 것은 아무나 부담 없이 자주 와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외로움의 함정 속에서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라도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관에 바라는 것은 경로당과 동일한 경제적 물적 지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경로당은 대한노인회에서 주관하고 지역 안배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창신동에는 3곳이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바란다면 이곳에 오려면 등이 꺾어질 것 같은 심한 경사가 있는 오르막을 힘든 다리를 끌다시피 와야 하는 것을 개선해 주었으면 합니다. 휠체어를 타는 분은 전혀 올 수가 없는 환경을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창신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어서 걱정됩니다.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싸움으로 번질까 봐요. 마실은 하나의 마음이었는데, 이런 일로 불편한 사람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이 공간이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입니다. 바라는 것은 지금처럼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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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저에게 이곳 마실이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독서실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한 고독감으로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증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의 추천으로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르신들의 환대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 곳에나 짐이 된다는 자신의 처지로 쪼그라들어 갈 곳이 없었던 제게 늘 갈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입니다. 느리게 말하는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 웃어 주시는 분들이 제게 주신 사랑만큼 저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저는 창신동에 오랜 시간 혼자 살아가고 있는 노인으로서 말씀드릴게요. 창신동은 독거노인이 많아요.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면 할수록 외로움의 깊이는 더 커짐을 느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심하면 노인우울증으로 힘들어해요. 저도 그럴 즈음 이곳을 알게 되었어요. 입구부터 시끌시끌했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지요. 칠판에 손글씨로 쓰여 있는 것이 정겨웠어요. 이제는 혼자서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사람이 그리울 때면 찾아오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분께서 “뭔 이유가 있어. 그냥 좋잖아. 오는 것만으로도 좋잖아. 그것이 이 마실의 의미와 가치예요.”라고 하신다.


벽 한켠에 붙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의 행복한 약속

하나. 약속 시간을 꼭 지킵니다.

둘. 서로서로 환대합니다.

셋. 뒷담화 하지 않습니다. 

넷. 모든 의견을 존중합니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창신동 ‘마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이유인가 보다. 더욱 이 공간과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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