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종로구 자하문밖 동네 사람들의 몸살림 밥상 이야기
날짜 : 2025년 6월 26일
장소 : 행복한 동행 <몸살림 밥상>
기록 : 최대용 (글), 최정화(사진)
종로구 북쪽 청와대와 칠궁을 지나 북악산과 인왕산이 연결되는 마루의 자하문 고개를 똑 넘으면 북한산 국립공원 아래 계곡까지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 다섯 개 동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행정구획상 평창동과 부암동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예전부터 대형 단독주택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이곳은 저기 아무개 재벌집이 있다는데, 소문에는 어느 유명한 연예인이 이사를 왔다는데 하지만 높은 산 높은 담 넘어 사는 그들의 모습은 몇십 년이 지나도 보기 어렵다. 잘 가꾸어진 아름다울 그들의 정원도 상상 속의 그림일 뿐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오래된 빌라촌과 역시 오래되고 단지가 작은 아파트와 차가 닿지 않는 좁고 가파른 골목에 산다. 식구들의 넉넉한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나 병원에 갈 때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이 있는 동네로 넘어가야 한다. 큰 집들 사이에 산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중에 하나는 큰 돌들 사이 작은 모래가 눈에 띄지 않는 것과 비슷한데 큰 집들로 대표되는 이미지로 다 같이 퉁쳐지는 경향이 있다. 이 동네는 시내 -이 동네 사람들에게 ‘시내’란 교통이 편리한 사대문 안팎을 말한다. -에 가면 보는 그 흔한 주민 공유 공간 하나 없고 쉬다 갈 수 있는 정원이나 휴식공간도 드물다. 은행도 자꾸 없어지는 추세니 뜨거운 여름날에 집에 가려면 나이 불문 쉴 새 없이 헉헉대며 고바위를 올라야 한다.
그러나 멀찌감치 보이는 북한산의 자태가 얼마나 멋이 있는지! 비록 너무 높아 갈 수는 없어도 눈으로 호강한다. 아침부터 조잘대는 온갖 새들의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계곡에는 물도 많다. 산이 있으니 대기도 깨끗하다. 오직 자연과 가깝다는 점이 여기에 사는 기타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장도 보고 밥도 먹고 배우고 사람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주민들은 큰 돌에 끼인 작은 모래같이 어딘가 약간 우울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 동네, 개인주의가 너무 강해.” “자하문 밖 사람들은 절대 안 모여. 공동체가 안 되는 곳이야.”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몇 년 전 파국을 맞은 주민자치회 이야기도 그 증거라는 듯 간간이 들렸다.
좀 더 들여다보면 내부 사정은 이랬다. 세월이 흐르자 집의 크기보다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모두들 나이가 든 것이다. 이제는 집 밖으로 나가기도 체력이 달려 힘들고, 나갈 구실도 점점 없어졌다. 요양원만이 나의 미래인가?
어느 날 동네에 ‘빛나는 시니어, 자기 돌봄 프로젝트’라는 플랜카드가 걸렸다. 2023년 8월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나이 먹어서도 계속 잘살아 보자’라는 설명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름도 낯선 ‘지역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진 중년 여인들이 기획하여 동네 보건소의 지원을 받고 동네 한의원 휴게실을 빌리고 구청의 공모사업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첫 모임에 한의원 휴게실에서 열네 명이 모였다. 매주 화요일에 모여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강사 강의를 듣고 제공하는 도시락도 먹고 차와 간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세 번 만나는 사이, 삼년 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는 정옥 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은 언니를 만나 단짝이 되었다. 보라색을 좋아하고 사진을 잘 찍는 솔향기 님에게는 이 손 저 손 작은 보라색 선물들이 자꾸 주어졌다. 평소에도 보라색만 보면 솔향기 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음이 넓고 입담이 좋은 분이 있었다. 회장님으로 추대되었다. 수줍게 앉아 있다 뒷정리를 잘하는 분이 있었다. 침을 오래 공부한 분이 계셨다. 모인 사람 중에 제일 고령인데 체조로 단련하여 제일 건강한 분이 있었다. 이분에게 체조를 배우게 되었다. 장소가 없으니, 누구네 빌라 노인정을 임시로 빌려 쓰기로 하였다. 서로 옛날 사진을 가져와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걷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다. 다음 주 무슨 요일에 만나 걷자고 약속을 잡았다. 모임은 빠르게 진화하여 월요 홍제천 걷기 1, 2차, 수요 등산, 화요 시니어 체조 등으로 조직되고 실행되었다. 지역활동가들은 걷기 좋은 노선을 탐방하러 다녔다.

맨발 걷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맨발로 여기저기 걸어보기도 했다. 야무진 정옥 님이 총무를 맡았다. 하하호호 걷고 나면 이 가방 저 가방에서 간식이 튀어나왔다.
이 중에 음식을 잘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다음에 모여 이런저런 걸 만들어 먹자고 하셨다. 그런데 장소가 없었다. 일단 체조를 하는 노인정에 양해를 구하고 하루를 더 빌려 쓰기로 했다. 첫날, 팽이버섯전을 부치고 나물 무채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그 복닥복닥하고 정겨운 느낌에 모두 반했다. 가져온 반찬들을 다 풀어 놓으니 한 상이 가득했다. 참으로 먹는 데서 정이 나는 것이었다. 같이 먹으니 밥맛도 꿀맛으로 변했다. 설거지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고, 앞으로 계속 같이 밥을 해 먹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평창동 금강하이츠빌라 노인정, 부암동 자치센터 마을문고 부엌, 평창동 노인정, 구기동 노인정, 활동가인 주영 님의 집, 모임원인 금자 님의 집, 산속인 백사실터를 전전하며 햇수로 삼 년 동안 밥을 함께 해 먹고 있다.
한살림 조합원 활동이기도 해서 매달 소정의 지원을 받아 주요 재료를 산다. 모임 안에 ‘장금이들’이라 불리는 핵심 요리사들이 있다. 솜씨의 자부심이 높아져 종로구 주민소통센터의 축제에도 김치천과 야채전으로 부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약간의 수익이 생겼다. 구기동 이북오도청에서 음식나누기 행사할 때도 참여했다. 나이 들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지기 쉬울까. 다들 신기해한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무릎 수술로 한동안 못 나온 총무님은 배달서비스를 해 드리고, 먹는 건 좋은데 운동은 싫은 회장님을 억지로 불러내는 것도 늘 즐거운 숙제다. 계절이 좋은 때 차를 몇 대에 나눠타고 을왕리도 다녀왔고 제부도도 다녀왔다. 같이 먹을 쌈채소도 보건소 옥상에서 길렀다.

뭐 같이 할 거 없나, 생각하면 자지러졌던 힘이 다시 솟는다. 이렇게 오래 이 동네에서 행복하게 같이 살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앞으로 구청에서 안정적으로 모여 밥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동네 주민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꿈꾸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이들, 젊은이들까지 어우러지는 활기찬 주민공유공간을 꿈꿔본다.
대상 : 종로구 자하문밖 동네 사람들의 몸살림 밥상 이야기
날짜 : 2025년 6월 26일
장소 : 행복한 동행 <몸살림 밥상>
기록 : 최대용 (글), 최정화(사진)
종로구 북쪽 청와대와 칠궁을 지나 북악산과 인왕산이 연결되는 마루의 자하문 고개를 똑 넘으면 북한산 국립공원 아래 계곡까지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 다섯 개 동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행정구획상 평창동과 부암동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예전부터 대형 단독주택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이곳은 저기 아무개 재벌집이 있다는데, 소문에는 어느 유명한 연예인이 이사를 왔다는데 하지만 높은 산 높은 담 넘어 사는 그들의 모습은 몇십 년이 지나도 보기 어렵다. 잘 가꾸어진 아름다울 그들의 정원도 상상 속의 그림일 뿐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오래된 빌라촌과 역시 오래되고 단지가 작은 아파트와 차가 닿지 않는 좁고 가파른 골목에 산다. 식구들의 넉넉한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나 병원에 갈 때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이 있는 동네로 넘어가야 한다. 큰 집들 사이에 산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중에 하나는 큰 돌들 사이 작은 모래가 눈에 띄지 않는 것과 비슷한데 큰 집들로 대표되는 이미지로 다 같이 퉁쳐지는 경향이 있다. 이 동네는 시내 -이 동네 사람들에게 ‘시내’란 교통이 편리한 사대문 안팎을 말한다. -에 가면 보는 그 흔한 주민 공유 공간 하나 없고 쉬다 갈 수 있는 정원이나 휴식공간도 드물다. 은행도 자꾸 없어지는 추세니 뜨거운 여름날에 집에 가려면 나이 불문 쉴 새 없이 헉헉대며 고바위를 올라야 한다.
그러나 멀찌감치 보이는 북한산의 자태가 얼마나 멋이 있는지! 비록 너무 높아 갈 수는 없어도 눈으로 호강한다. 아침부터 조잘대는 온갖 새들의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계곡에는 물도 많다. 산이 있으니 대기도 깨끗하다. 오직 자연과 가깝다는 점이 여기에 사는 기타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장도 보고 밥도 먹고 배우고 사람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주민들은 큰 돌에 끼인 작은 모래같이 어딘가 약간 우울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 동네, 개인주의가 너무 강해.” “자하문 밖 사람들은 절대 안 모여. 공동체가 안 되는 곳이야.”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몇 년 전 파국을 맞은 주민자치회 이야기도 그 증거라는 듯 간간이 들렸다.
좀 더 들여다보면 내부 사정은 이랬다. 세월이 흐르자 집의 크기보다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모두들 나이가 든 것이다. 이제는 집 밖으로 나가기도 체력이 달려 힘들고, 나갈 구실도 점점 없어졌다. 요양원만이 나의 미래인가?
어느 날 동네에 ‘빛나는 시니어, 자기 돌봄 프로젝트’라는 플랜카드가 걸렸다. 2023년 8월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나이 먹어서도 계속 잘살아 보자’라는 설명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름도 낯선 ‘지역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진 중년 여인들이 기획하여 동네 보건소의 지원을 받고 동네 한의원 휴게실을 빌리고 구청의 공모사업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첫 모임에 한의원 휴게실에서 열네 명이 모였다. 매주 화요일에 모여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강사 강의를 듣고 제공하는 도시락도 먹고 차와 간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세 번 만나는 사이, 삼년 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는 정옥 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은 언니를 만나 단짝이 되었다. 보라색을 좋아하고 사진을 잘 찍는 솔향기 님에게는 이 손 저 손 작은 보라색 선물들이 자꾸 주어졌다. 평소에도 보라색만 보면 솔향기 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음이 넓고 입담이 좋은 분이 있었다. 회장님으로 추대되었다. 수줍게 앉아 있다 뒷정리를 잘하는 분이 있었다. 침을 오래 공부한 분이 계셨다. 모인 사람 중에 제일 고령인데 체조로 단련하여 제일 건강한 분이 있었다. 이분에게 체조를 배우게 되었다. 장소가 없으니, 누구네 빌라 노인정을 임시로 빌려 쓰기로 하였다. 서로 옛날 사진을 가져와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걷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다. 다음 주 무슨 요일에 만나 걷자고 약속을 잡았다. 모임은 빠르게 진화하여 월요 홍제천 걷기 1, 2차, 수요 등산, 화요 시니어 체조 등으로 조직되고 실행되었다. 지역활동가들은 걷기 좋은 노선을 탐방하러 다녔다.
맨발 걷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맨발로 여기저기 걸어보기도 했다. 야무진 정옥 님이 총무를 맡았다. 하하호호 걷고 나면 이 가방 저 가방에서 간식이 튀어나왔다.
이 중에 음식을 잘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다음에 모여 이런저런 걸 만들어 먹자고 하셨다. 그런데 장소가 없었다. 일단 체조를 하는 노인정에 양해를 구하고 하루를 더 빌려 쓰기로 했다. 첫날, 팽이버섯전을 부치고 나물 무채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그 복닥복닥하고 정겨운 느낌에 모두 반했다. 가져온 반찬들을 다 풀어 놓으니 한 상이 가득했다. 참으로 먹는 데서 정이 나는 것이었다. 같이 먹으니 밥맛도 꿀맛으로 변했다. 설거지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고, 앞으로 계속 같이 밥을 해 먹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평창동 금강하이츠빌라 노인정, 부암동 자치센터 마을문고 부엌, 평창동 노인정, 구기동 노인정, 활동가인 주영 님의 집, 모임원인 금자 님의 집, 산속인 백사실터를 전전하며 햇수로 삼 년 동안 밥을 함께 해 먹고 있다.
한살림 조합원 활동이기도 해서 매달 소정의 지원을 받아 주요 재료를 산다. 모임 안에 ‘장금이들’이라 불리는 핵심 요리사들이 있다. 솜씨의 자부심이 높아져 종로구 주민소통센터의 축제에도 김치천과 야채전으로 부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약간의 수익이 생겼다. 구기동 이북오도청에서 음식나누기 행사할 때도 참여했다. 나이 들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지기 쉬울까. 다들 신기해한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무릎 수술로 한동안 못 나온 총무님은 배달서비스를 해 드리고, 먹는 건 좋은데 운동은 싫은 회장님을 억지로 불러내는 것도 늘 즐거운 숙제다. 계절이 좋은 때 차를 몇 대에 나눠타고 을왕리도 다녀왔고 제부도도 다녀왔다. 같이 먹을 쌈채소도 보건소 옥상에서 길렀다.
뭐 같이 할 거 없나, 생각하면 자지러졌던 힘이 다시 솟는다. 이렇게 오래 이 동네에서 행복하게 같이 살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앞으로 구청에서 안정적으로 모여 밥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동네 주민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꿈꾸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이들, 젊은이들까지 어우러지는 활기찬 주민공유공간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