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종로구 주민소통사업 탐방 - 광복회 종로구지회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 날짜: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 장소: 마로니에공원, 개뿔카페
○ 기록: 최대용 기록활동가
효제동 72번지 일대의 골목은 백 년 전 김상옥 의사가 홀로 쌍권총을 들고 천 명의 일본 순사와 대적한 곳이다. 강렬했던 투쟁의 일대기였으나 그와 관련된 유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일본 순사에게 쫓기던 여학생을 구하면서 얻게 된 일본순사의 검이 여러 사람을 거쳐 어렵게 전해져 독립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정도다. 그 외에는 사용하던 밥그릇과 수저 정도가 남은 전부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당시 신문 기사와 호외를 통해, 또 해방 후에 가장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 의해 가장 먼저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되며 그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광복회 종로구지회가 올해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선정한 역사는 김상옥 의사다. 고작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산화한 김상옥 의사. 마로니에 광장에 이전의 뜨거웠던 역사 현장을 배우려는 젊은 멘티들이 모였다. 이날의 멘티는 다섯 명이었는데, 한국에 온 교환학생 두 명도 있었다. 특별히 이날은 김상옥 의사의 증손녀인 김지원 씨가 참여해 멘티들에게 의사의 일생을 소개해주었다. 김지원 씨는 현재 김상옥 의사의 행적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김지원 씨가 소회를 밝혔다.
“어렸을 때는 가난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아버지가 다시 보이게 되었어요. 지금은 그분의 발자취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광복회 윤재원 종로구지회장의 안내로 김상옥 의사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생가터를 찾았는데 옛집은 사라지고 그 주소지에는 김상옥 의거 터임을 알리는 A4용지 크기의 종이가 하나 붙어 있을 뿐이었다.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벽보도 붙어 있었다. 그는 직업을 잃은 옛 대한제국군 포수의 아들로, 가난에서 떨쳐 일어나 맨손으로 부를 일구고, 무지에서 앎에 대한 열망으로 지식인으로 거듭나고, 만주로, 다시 조선으로 계속 옮겨 다니면서 일제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윤재원 지회장은 마지막 장소인 개뿔 카페에서 큰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이화동 지붕을 가리켰다. 근방이 모두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집들이다.
“저 지붕들을 보세요. 김상옥 선생님은 일본 경찰들을 피해 연이어 있는 저 지붕들을 타고 달렸다고 합니다.”
이날 함께 탐방에 참여한 이탈리아에서 온 Fraterico 교수는 김상옥 의사의 의거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비슷한 사례로서 이탈리아의 나치항전 빨치산의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멘티로 참여한 대학생은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매일 지나다니던 동네 길이고, 사실 김상옥 의사 동상인 줄도 몰랐는데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페 아래에 성곽 아래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열들 앞에 옷깃을 여기게 된다.

○ 대상: 종로구 주민소통사업 탐방 - 광복회 종로구지회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 날짜: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 장소: 마로니에공원, 개뿔카페
○ 기록: 최대용 기록활동가
효제동 72번지 일대의 골목은 백 년 전 김상옥 의사가 홀로 쌍권총을 들고 천 명의 일본 순사와 대적한 곳이다. 강렬했던 투쟁의 일대기였으나 그와 관련된 유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일본 순사에게 쫓기던 여학생을 구하면서 얻게 된 일본순사의 검이 여러 사람을 거쳐 어렵게 전해져 독립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정도다. 그 외에는 사용하던 밥그릇과 수저 정도가 남은 전부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당시 신문 기사와 호외를 통해, 또 해방 후에 가장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 의해 가장 먼저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되며 그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광복회 종로구지회가 올해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선정한 역사는 김상옥 의사다. 고작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산화한 김상옥 의사. 마로니에 광장에 이전의 뜨거웠던 역사 현장을 배우려는 젊은 멘티들이 모였다. 이날의 멘티는 다섯 명이었는데, 한국에 온 교환학생 두 명도 있었다. 특별히 이날은 김상옥 의사의 증손녀인 김지원 씨가 참여해 멘티들에게 의사의 일생을 소개해주었다. 김지원 씨는 현재 김상옥 의사의 행적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김지원 씨가 소회를 밝혔다.
“어렸을 때는 가난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아버지가 다시 보이게 되었어요. 지금은 그분의 발자취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광복회 윤재원 종로구지회장의 안내로 김상옥 의사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생가터를 찾았는데 옛집은 사라지고 그 주소지에는 김상옥 의거 터임을 알리는 A4용지 크기의 종이가 하나 붙어 있을 뿐이었다.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벽보도 붙어 있었다. 그는 직업을 잃은 옛 대한제국군 포수의 아들로, 가난에서 떨쳐 일어나 맨손으로 부를 일구고, 무지에서 앎에 대한 열망으로 지식인으로 거듭나고, 만주로, 다시 조선으로 계속 옮겨 다니면서 일제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윤재원 지회장은 마지막 장소인 개뿔 카페에서 큰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이화동 지붕을 가리켰다. 근방이 모두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집들이다.
“저 지붕들을 보세요. 김상옥 선생님은 일본 경찰들을 피해 연이어 있는 저 지붕들을 타고 달렸다고 합니다.”
이날 함께 탐방에 참여한 이탈리아에서 온 Fraterico 교수는 김상옥 의사의 의거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비슷한 사례로서 이탈리아의 나치항전 빨치산의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멘티로 참여한 대학생은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매일 지나다니던 동네 길이고, 사실 김상옥 의사 동상인 줄도 몰랐는데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페 아래에 성곽 아래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열들 앞에 옷깃을 여기게 된다.